8월 21일 (화요일)
Skypoint Hotel(모스크바) - 크렘린궁(Московский Кремль) - 붉은광장(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성바실리성당, 굼백화점) - 아르바트거리(Arbat St/빅토르최 추모벽) - 세레메티예보 국제공항(SU 026) - 상트뻬쩨르부르크 - 호텔
이번 여행에서 첫번째로 만나는 관광지 크렘린궁.
얼마나 비밀이 많은 구중궁궐이었으면 우리말에 속을 도무지 알수없는 사람을 크레믈린같은 사람이라고 했을까?
지극히 일부이겠지만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음에 마음이 설렌다.
크렘린궁을 들어가기위해 길게 줄을 선 관광객들.
알렉산드로브스키공원(Aleksandrovskiy Sad)을 가득 메우고 있다.
알산드로공원 풍경....수국이 만개했다.
크렘린에 입장하기위해 입장권 구입과 상당히 까다로운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검색대를 나오면 만나게 되는 쿠타피야 타워(Kutafiya (Predmostnaya) Tower)
왼쪽이 쿠타피야 타워(Kutafiya (Predmostnaya) Tower)
오른쪽이 크레믈린궁으로 들어가는 트로이스카야타워(Troitskaya Tower, Троицкая Башня)
쿠타피야 타워(Kutafiya (Predmostnaya) Tower)에서 크레믈린으로 들어가는 트로이스카야타워(Troitskaya Tower)에 이르는
트리니티 다리(Trinity bridge)를 통과하게 된다.
크레믈린궁 내부로 깊숙히 들어오면 소보르나야광장(Sobornaya Square)이 있는데, 이 광장을 중심으로
성모승천사원(모스크바 도미션 성당/Успенский собор), 이반대제 종탑(Колокольня Ивана Великого), 아르항겔 대성당(Архангельский собор), 성모영보 성당(Благовещенский собор), 러시아 동방정교회(Verkhospasskiy Sobor, Верхоспасский собор), 차르 대포(Царь-пушка), 황제의 종(챠르벨, The Tsar Bell, Царь-колокол) 등이 밀집되어 있다.
이 중 관광객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곳이 성모승천사원이다.
구글지도에는 이 사원을 모스크바 도미션성당(Успенский собор)으로 표기하고 있다.
성모승천사원은 수세기에 걸쳐 러시아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의 증거장소다. 국왕들의 대관식이 치뤄졌고, 정교회 총주교들이 선출되었으며, 전쟁에 앞서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가졌고, 전쟁 승리 감사기도회를 가졌으며, 주요 국가문서 또는 명령서를 발표하는 장소이기도 하며, 대주교 및 총주교들의 장례식을 치루고 무덤을 겸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출입은 서문을 이용하며, 내부 사진촬영은 금지되어있어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아올 수 밖에 없었다.
아래 사진은 성모승천사원 남문 우측면에서 본 모습이다.
성모승천사원 동측면에서 본 돔과 프레스코화
성모승천사원의 가장 중요한 문인 남문에서 본 모습이다.
남문은 사원의 정문으로 화족들이 이용하던 문이었다고한다. 금장식이 박힌 청동문을 통해 사원으로 들어갔는데, 문 위쪽에는 <블라디미르의 성모>가, 그 위에는 여섯명의 성자들이 그려져 있으며, 문 주변에 무늬가 아름다운 아치형의 기둥들이 몇 겹으로 세워져 있다.
이반대제 종탑(Колокольня Ивана Великого)
이반대제의 종탑도 크레믈린 안의 다른 건축물들처럼 이테리 건축가 '본 프랴진'에 의해 건축되었다.
처음 건축 당시 종탑의 높이는 60미터였으나 1600년 종탑을 개축하면서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가장 높은 81미터로 높아졌으며, 그 때의 모습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종탑은 총 20개의 크고 작은 종이 매달려있으며, 도시안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외부의 침입이 발생했을 때 종을 울려 국민들에게 알리는 파수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종소리는 반경 25~30키로미터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하니 파수대의 역할을 충분히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도 정교회의 큰 명절이 있을 때 종을 울려 기쁨을 공유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성모수태고지 사원(구글지도에는 ‘성모영보 성당’ /Благовещенский собор, 블라가베쉔스끼 싸보르)
크레믈 궁전과 종루 사이에 있으며 1484-889년에 쁘스끄바에 의해 건립되어 1547년 화재로 불 탔으나 이반 4세가 다시 복구시켰다.
원래의 용도는 황제 가족의 개인 예배당이다.
`요한 묵시록''을 주제로 한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
그리스 로마의 철학자들이 입구에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호메로스 등이 있지만 심하게 색이 바래서 알아보기 힘들다.
대천사 사원 (아르항겔 대성당, Архангельский собор, 아르항겔스끼 싸보르)
역대 귀족의 시체 안치소로 이용되며, 모두 48개의 관이 나란히 놓여 있다.
지붕의 작은 돔들이 화려한 러시아 동방정교회(Verkhospasskiy Sobor, Верхоспасский собор)
Museum of decorative art and daily life in 17th century Russia
왼쪽 큰 건물이 대통령 집무실(Senatskiy Dvorets, Сенатский дворец)
오른쪽 탑(Spasskaya Bashnya, Спасская башня)을 통해 붉은광장으로 이어진다.
대통령 집무실(Senatskiy Dvorets, Сенатский дворец)
개미새끼 한마리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계가 삼엄해 공포감마져 느끼게 한다.
붉은광장으로 이어지는 탑(Spasskaya Bashnya, Спасская башня)
황제의 대포 (Царь-пушка, 짜리 뿌슈까)
크레믈 내 12사도 사원의 동남쪽에 있는 거대한 대포로서 1586년 안드레이 체홉이 만들었다. 이 포는 길이 5.34미터, 구경 890mm, 무게는 40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대포는 사격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대포 앞에 있는 3개의 대포알은 105mm로서 사용하지 않는 장식용이다. 지금까지 이 대포는 사격을 한 적이 없으며, 대 러시아를 나타내는 하나의 장식물에 불과하다.
황제의 종 (Царь-колокол, 짜리-깔라꼴)
짜르의 대포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종은 세계에서 가장 큰 종으로 1733-35년에 이반 마토린과 아들 미하일이 주조하였는데, 무게가 무려 200톤이고, 높이는 6.14미터, 지름은 6.6미터에 이른다. 화재로 깨진 부분만도 11.5톤이나 된다. 이 종에는 금 72Kg, 은 525Kg이 들어 갔으며 종의 표면에는 짜리 알렉세이의 초상과 종의 유래를 적은 2개의 명문과 5개의 이콘이 장식되어 있으며 현 위치에 옮긴 것은 1836년이다. 그러나 종의 주조 중에 불이나 누군가 종에 물을 부어 버리는 바람에 종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미완성으로 끝났다.
크레믈 무기고 (Оруженная палата, 아루줸나야 빨라따)
16세기 당시 병기를 제작. 보관하는 창고로 지어졌으나 1702년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러시아의 공예미술품, 왕관, 각종 선물, 전리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뾰뜨르 대제의 왕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옥좌, 각종 금은 세공품과 보물이 진열되어 있다.
크레믈린을 관광하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위병교대 장면.
황금빛 돔과 십자가로 빛나는크렘린[Kremlin in Moskva, Russia]
18세기 러시아의 수도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졌지만 모스크바는 여전히 러시아의 수공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을 계속하면서 러시아의 2대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 러시아혁명 후 다시 수도가 된 모스크바는 소비에트시대에 정치 · 문화 · 경제 · 교통의 중심지로서 급속하게 발전했고 1991년 이후에도 러시아연방의 수도로서 세계적인 거대 도시이다.
모스크바의 중심에는 크렘린이 있다. 수십 년 동안 소비에트정권의 불가해하고 무시무시한 힘을 상징한 크렘린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소비에트정권의 중추임에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비밀에 쌓여 있었다. 그래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크렘린이라 부르기도 한다. 크렘린이 공개된 것은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이다.
2.4킬로미터 길이의 성벽에 둘러싸인 크렘린은 면적이 28만 3000평방미터이고 성벽 중간 중간에는 18미터자리 뾰족탑들이 세워져 있다. 크렘린 내부에는 러시아정교회 대주교와 황제의 궁전, 성당 그리고 20세기에 세워진 행정기관들이 들어서 있고 그 주위에는 붉은 광장, 성바실리성당이 있다. 크렘린은 권력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세기 세계를 좌지우지할 만한 막강한 정책들이 은밀하게 계획되고 실행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크렘린은 1156년 처음 축성되었는데 당시에는 목재건물들이 오크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었고 면적은 지금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크렘린은 화재로 무너지고 다시 확장되는 과정을 자주 반복했다. 1367~1368년 드미트리 톤스코이 대공이 흰색 벽의 거대한 요새와 높은 탑들을 세웠는데 이때부터 모스크바는 ‘흰색 담의 도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크렘린이 현재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차르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한 독재자 이반 3세(Ivan Ⅲ, 1440~1505) 치하 때 부터이다. 이반 3세는 자신의 권력을 확고하기 위해 크렘린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1460년대 들어 크렘린의 석회암 성벽은 파손 상태가 심각해 붕괴할 위험에 처했다. 이반 3세는 자국 건축가들에게 보수시켰지만 결국 이탈리아 건축가들을 불러들여야 했다. 이탈리아 건축가들은 성벽을 길이 2,235미터, 두께 3.5~6.5미터, 높이 8~19미터로 확장했고 ‘제비꼬리’ 모양의 독특한 이탈리아식 총안(銃眼)을 도입해 방어기능이 주였던 요새를 왕조의 중요한 근거지이자 동방정교회의 요람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반 3세는 러시아 통일을 거의 완성했고 중앙집권화와 군주권 강화를 통해 독재자로 군림했다.
그 후 1571년 크렘린은 타타르족에게 파괴되고 약탈당했지만 1624~1723년에 주요 건물들이 또다시 증축되었다. 그런데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긴 후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했다. 이 원정은 실패로 끝났지만 크렘린은 큰 위기를 맞았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탈출하면서 크렘린을 완전히 파괴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폴레옹의 명령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이때 파괴된 크렘린은 1838~1849년 보수되는 동시에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크렘린은 붉은 성벽이 감싸고 있는데 성벽은 다시 북서쪽의 네그린나야강, 북동쪽의 해자, 남쪽의 모스크바강에 둘러싸여 있다. 현재 네그린나야강은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 밑으로 흐르고 있고 볼리사야 카멘니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 강이 모스크바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볼 수 있다.[자료출처 : 세계 불가사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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