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travel/Italy

[해외여행] 늦깍이 서유럽기행 #26 이탈리아/피렌체/단테의 집 Casa di Dante

수지인 2017. 6. 25. 01:00



5월 21일 (일요일)


Hotel Ariston Fiuggi - 피렌체 미켈란젤로언덕 - 중식 - 산타크로체 광장 - 단테의 집(Casa di Dante ) - 두오모 - 시뇨리아 광장 - 베네치아 호텔(Hotel Oasi Conselv Padova)







단테 기념관 Museo Casa di Dante
단테의 생가를 복원한 집

원래 단테가 살던 집은 없어졌지만, 피렌체 시가 단테가 살았던 위치의 건물을 사들여 단테 기념관으로 지은 곳이다. 단테는 1265년 5월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드란데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후에 단테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기념관은 단테 탄생 700주년이었던 1965년 처음 문을 열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는데, 일곱 개의 방에 걸쳐 단테의 침실과 서재, 그리고 그의 행적을 시대별로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특히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단테의 〈신곡〉 전편을 인쇄한 것을 계단 벽에 걸어 두었고, 한국어를 비롯한 전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단테의 〈신곡〉을 볼 수 있다.
보티첼리가 그린 〈신곡〉의 삽화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단테는 35세 때 정치적인 이유로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죽을 때까지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르네상스 시대의 4대 시인으로 손꼽히며 피렌체에서 인정받는 시인이지만, 예술가의 쓸쓸한 최후는 안타깝다. 이 집 근처에는 단테의 연인 베이트리체가 살았었다고 하지만,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단테의 집 앞 건물벽에 놓인 단테의 흉상




단테의 흉상

단테 기념관 앞의 작은 광장 바닥에는 단테의 흉상이 있다. 이 흉상을 밟으면 행운이 온다고 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이 흉상을 찾기 위해 단테 기념관 앞의 바닥을 뚫어져라 뒤진다. 그냥 보면 단테의 흉상이 보이지 않고 물을 뿌려야만 보이기 때문에, 간혹 가이드 투어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 뿌려진 물을 보면 단테의 흉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단테(Dante)

단테(1265~1391)는 과거 교황파와 황제파가 싸우던 13세기 교황파와 정치 싸움에 휘말려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라벤나로 쫓겨났다. 지금도 라벤나의 단테의 무덤 앞에는 꺼지지 않는 작은 등불이 있다. 그런데 지금도 단테를 추방한 피렌체 시에서 별도로 예산을 내어 라벤나 시에서 감당해야 할 이 기름 값을 피렌체에서 속죄의 의미로 대고 있다. 매년 9월 둘째 일요일마다 이 기름을 옮기는 의식이 이루어진다.

[자료사진] 산타크로체성당 안에 있는 단테의 가묘



단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문예 부흥의 선구자로 불릴 뿐만 아니라 현대 이탈리아어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다. 또한 그의 명작인 〈신곡〉은 후일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신곡에서 묘사한 지옥의 세계를 우리는 시스티나 예배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상당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 베아트리체에 대한 끝없는 사랑의 시를 지었다.

13세기 피렌체의 교황을 지지하는 구엘파(guelfa)당과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리나(ghibellina)당 중에 단테의 집안은 전통적으로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리나당이었다. 여기서 황제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뜻한다. 그는 1296년 6월에 통령까지 지내게 되지만 그가 소속되어 있던 온건파인 백당이 강경파인 흑당에게 밀리자, 결국 1300년 유랑의 길을 떠나게 되고 명작인 〈신곡〉을 남기게 된다. 피렌체는 이후 단테와 단테의 아들들에게 사형을 구형하였고, 이에 라벤나의 영주였던 폴렌타는 단테에게 거처를 제공한다. 그의 아들들은 이후 성직자가 되었고 그는 1321년에 죽었다.

단테의 영원한 여인 베아트리체. 단테는 9살 때 1살 아래인 베아트리체를 베키오 다리에서 만난다. 아름다운 소녀를 본 단테는 이때부터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과 찬미의 마음을 간직한다. 그리고 9년 후 우연하게 산타 크로체 성당 앞에서 만난 그녀와 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정중한 그녀의 인사에 지극한 행복을 느낀 단테. 18세에 결혼해 1290년 24살의 나이로 요절한 그녀를 단테는 그의 작품 〈신곡〉으로 옮겨 온다. 베아트리체의 집이 단테의 집에서 50여m 떨어진 곳이었다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자료사진] 도메니코 디 미첼리노, <단테와 신곡>,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소장





산타크로체성당 우측에 놓인 단테 기념비(Monumento a Dante Alighieri)



단테 박물관



단테 교회. 이탈리아어 "Chiesa"는  영어 "church"




[자료사진]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나다〉, 영국 리버풀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 소장




참고자료


ENJOY 이탈리아 | 윤경민 | 넥서스

ENJOY 유럽 | 문은정 외 | 넥서스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 김상근 | 21세기북스

Daum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