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travel/Norway

[북유럽여행/노르웨이여행] #19 - 국립미술관(Nasjonalgalleriet)

수지인 2018. 12. 17. 01:00



8월 28일 (월요일)

예일로(Geilo) Ustedalen Hotel - 오슬로(Oslo, 오슬로 시청사 - 국립미술관(Nasjonalgalleriet) - 카를요한거리 - 비겔란조각공원) - DFDS 승선(오슬로,노르웨이~코펜하겐,덴마크)이동




오슬로 국립미술관은 노르웨이 소재 미술관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렘브란트, 고야, 모네, 마티스, 반 고흐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포함해서 노르웨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5만 여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국립미술관을 찾은 목적은 이 많은 작품을 볼 시간은 없고 19번 뭉크의 방을 보기 위함이다.




뭉크의 방으로 이동하는 동선앙에 걸린 그림과 조각작품이 눈에 들어와 꽃인다.



















19번 방. 뭉크의 방이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독일 표현주의 발전에 기여한 19~20세기 노르웨이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절규>와 <죽음의 방>.
그가 어렸을 때 부모와 동생이 죽었기 때문에 평생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혀야 했고, 이는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주제를 강렬하게 다룸으로써 보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감정을 자아내게 하는 그의 기법은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 〈절규 The Cry〉(1893)는 실존의 고통을 형상화한 초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자료출처:Daum백과]


↑↑ 어머니와 딸  Mother and Daughter



↑↑ 다리 위의 소녀들   Girls on a Bridge



↑↑ 하얀 밤  White Night



↑↑ 우울   Melankoli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대표작 절규<The Scream/ The Cry/ Skrik>



"하늘이 갑자기 핏빛같은 붉은색으로 변했다.

나는 우울감에 숨을 내려 쉬었다.

가슴이 조여 오는 통증을 느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자연을 관통해서 들려오는 거대하고 끝없는 비명을 느꼈다."


에드바르 뭉크가 '절규'를 그리게 된 상황을 설명한 글이라고 한다.


뭉크는 '절규'를 네 가지 버전으로 그렸는데 위의 그림이 가장 잘 알려진 '절규'라고 한다.

게다가 1994년에 도난을 당했다가 되찾은 사건으로 인해서 더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 삶의 춤   The Dance of Life



↑↑  재  Ashes





뭉크에 대한 평가

뭉크는 19세기 자연주의 회화의 경직된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고, 20세기 표현주의의 선구자인 인간적인 미술을 탄생시켰다.

당대의 한 인물은 그를 '노르웨이 최초의 인상파 화가이자 유일한 인상파 화가' 라고 묘사했다.

뭉크는 26세에 쓴 글에서 "나는 숨쉬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 즉 살아 있는 사람들을 그릴 것이다. 사람들은 이 작업의 신성함을 이해할 것이고, 교회에 있을 때처럼 모자를 벗을 것이다" 고 말했다. 인간 조건에 대한 그의 미술적 표현은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강렬한 힘을 갖고 있다. 이 호소력은 그를 노르웨이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초기 현대 미술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자료출처;Daum백과]



↑↑ 사춘기  Puberty



↑↑ 아픈 아이



↑↑ 그 다음 날   The Day After 






↑↑ 마돈나    Madonna






↑↑ 병실에서의 죽음  Death in the Sickroom




미술관 앞에 놓인 조각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