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travel/France

[해외여행] 늦깍이 서유럽기행 #64 프랑스 / 파리 / 루브르 박물관<1>

수지인 2017. 8. 2. 01:00



5월 27일 (토요일)

몽마르트르 언덕 - 콩코드 광장 - 알렉상드르 3세 다리 - 오페라 가르니에 - 중식 - 루브르 박물관 - 개선문 샹제리제 거리 - 에펠탑 - 세느강 유람선 투어-석식- Hôtel Première Classe Roissy( Paris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위치도>



↓↓카루젤 광장(Place du Carrousel)의 유리돔(Louvre Pyramid)과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 본 건물 이다.


박물관 전체를 모두 본다면 225개 전시실에 40만점의 예술품이 있다고 하니 작품 1점당 1분씩을 할애하면 공휴일을 뺀 개관시간 기준으로 3년이 걸리는 양이다. 그러니 몇시간 둘러보고 루브르를 보았다고 할 수는 없고 이미 잘 알려진 유명한 작품 수 점을 직접 눈 앞에서 보았다는데 의미를 두어야 할것 같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들어가니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보이는 만큼만 보고, 본 작품이라고 다 담지는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장이 넘는 사진이 카메라에 담겨있다. 버리기는 아까워 2번에 걸쳐 올려야겠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이자 파리 최고의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Musée du Louvre


루브르가 최초로 박물관이 된 것은 1793년으로,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낀 루이 14세가 베르사유에 화려한 궁전을 지어 거처를 옮긴 뒤 초기에는 왕실에서 수집한 각종 미술품을 보관 · 전시하는 소극적 의미의 미술 전시관이었으나 나폴레옹이 집권한 이후 수없이 많은 원정 전쟁을 통해 예술품을 매입, 선물, 약탈하면서 대규모 박물관으로 변모하였다. 루브르 미술관의 전시 작품은 크게 인류의 4대 문명의 시원을 나타내는 고고학 유물과 그리스도교 전례 이후의 서양 문명, 중세 예술, 르네상스 예술, 근대 미술 및 극동 지역 미술품으로 나누어진다.


루브르 박물관 건물은 원래 바이킹의 침입으로부터 파리를 방어하기 위해 세운 요새였다. 이후 16세기 때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새롭게 개조되었고, 이어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 등 많은 왕족들이 4세기에 걸쳐 루브르 궁전을 확장하고 개조했다. 하지만 루이 15세(Louis XV)가 베르사유로 궁전을 옮기고 나서 루브르는 주인 없는 궁전으로 방치되다가 나폴레옹 1세가 다시 루브르 궁전에 관심을 갖고 미술관으로서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고, 나폴레옹 3세가 1852년에 북쪽 갤러리를 완성하면서 오늘날 루브르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 후 1981년에는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루브르(Grand Louvre) 계획으로 전시관이 확장되고 1989년 박물관 앞에 건축가 I.M. 페이(Ieoh Ming Pei)의 설계로 유리 피라미드를 세우면서 대변신을 하게 되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225개 전시실에는 그리스, 이집트, 유럽의 유물, 왕실 보물, 조각, 회화 등 40만 점의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루브르 피라미드라 불리우는 유리돔 반지층의 쉴리관을 통해 입장한다.





관람 동선은 반지층의 쉴리관으로 입장해서 → 중세의 루브르를 둘러본 후 스핑크스를 보며 → 1층으로 올라가 → 고대 그리스 7전시실의 〈밀로의 비너스〉를 관람하며 → 드농관으로 넘어가 고대 에트루리아 및 로마의 유물들을 관람한 후 → 16~19세기의 이태리 조각들을 보고 → 다시 니케상 쪽으로 2층으로 올라간다. → 니케상을 본 후 13~15세기 이탈리아 회화와 16~17세기 이탈리아 회화까지 관람하며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한 작품들과, 라파엘로 등의 대작들을 보고
→ 프랑스 회화 대작이 있는 77, 75전시실을 관람한 후 → 다시 니케를 지나 아폴로 갤러리의 루이 15세 대관식 왕관의 다이아몬드를 관람한 후 → 쉴리관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간다. → 3층의 프랑스, 네덜란드, 플랑드르 회화를 둘러보고 → 2층으로 내려가 → 리슐리외 관의 나폴레옹 3세의 아파트를 둘러본 후 → 1층으로 내려와 → 함무라비 법전 등 메소포타미아의 유물들을 관람 후, → 1층과 반지층에 걸쳐 있는 프랑스 1~19세기 조각들을 관람하는 순서였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드농(DENON)관이다.





↓↓큐피트의 키스로 소생된 프시케
미모가 뛰어나 미의 여신 비너스에게 미움을 산 프시케는 자신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떠나버린 큐피트와의 이별을 후회하며 비너스에게 찾아간다. 비너스는 프시케에게 갖가지 시련을 주는데, 어느 날 프시케는 절대로 열지 말라고 했던 병을 호기심에 열어보고 그만 죽음의 잠에 빠지게 된다. 안토니오 카노바의 이 작품은 치명적 죽음의 잠에 빠진 프시케를 큐피트가 사랑의 키스로 깨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포로, 일명 죽어가는 노예
미켈란젤로가 만든 이 노예상은 율리우스 2세의 묘비 아래에 설치하려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율리우스 2세의 거대한 영묘는 완성되지 못했으며, 모세상과 노예상만 남아 있다. 오른쪽 노예는 청년의 몸으로 졸리거나 잠이 든 모습이고 왼쪽의 노예는 반항하며 벗어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만 모습이다. 역동적이며 속박에도 불구하고 천상을 바라보고 있다.




↓↓포로, 일명 죽어가는 노예







↓↓회화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é)
들라크루아 작품. 공화국을 세우려는 민중들이 일으킨 1830년 7월 혁명을 묘사한 그림인데, 여신의 뒤를 따라 죽은 동지들의 시체를 넘으면서 삼색기를 들고 진격하는 군중들의 모습을 담았다. 삼각형의 구도로 그려진 그림으로 자유의 여신의 오른편에 총을 들고 있는 인물이 들라크루아 자신이다.























↓↓메두사의 땟목(La Radeau de la Méduse)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의 작품으로 삶, 죽음, 희망을 묘사했다. 세네갈 해안에서 범선 메두사가 난파되어 150명이 하나의 뗏목을 타야 했고, 바다에서 12일간 버티다 15명만 구출되었던 실제 사건을 묘사했다. 피라미드 구도로 그려진 이 그림 속에는 영웅이 없고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인간의 비극을 그렸다. 이 그림으로 낭만주의 미술이 탄생되었다.











↓↓모나리자(Mona Lisa)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작품 중 하나이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인 조콘다의 아내로 알려져 있다. 주인공의 애칭 ‘리자’와 당시 상류층 부인들에게 붙였던 존칭 ‘모나’가 작품의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신비스럽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압권인 이 작품은 다음 세대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 유명세만큼이나 작품의 주인공에 대한 여러 설이 많다.





↓↓가나의 결혼식(Les Noces de Cana)
베로네즈라고 불리는 파올로 칼리아리가 그린 작품으로 루브르에 전시된 작품 중에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다. 폭이 거의 10m에 가까운 크기의 이 그림엔 130명이 등장하는데 베니스 회화의 거장들을 음악가로 등장시켰다. 이 그림의 주제는 가나의 결혼식인데, 배경은 마치 베니스의 한 연회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나의 결혼식은 아주 가난한 결혼식이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말을 하고 있는 인물은 한 명도 없지만 마치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우측에 노란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항아리에 붓고 있는 물의 색이 붉은 것으로 보아 예수의 첫 번째 기적,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포도주는 미사 중에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곧 성찬식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루브를 박물관을 잠시 보고 와서 루브르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몇번을 봐도 생소한 듯한 작품들

가끔 꺼내서 다시 보고픈 작품들

좋은 동영상자료를 통해 계속되는 지적 호기심과

예술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고자 링크해 둔다.







참고자료
ENJOY 유럽 | 문은정 외 | 넥서스
Google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