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travel/France

[해외여행] 늦깍이 서유럽기행 #63 프랑스 / 파리 / 오페라 가르니에 Opéra Garnier

수지인 2017. 8. 1. 01:00




5월 27일 (토요일)

몽마르트르 언덕 - 콩코드 광장 - 알렉상드르 3세 다리 - 오페라 가르니에 - 중식 - 루브르 박물관 - 개선문 샹제리제 거리 - 에펠탑 -
세느강 유람선 투어-석식- Hôtel Première Classe Roissy( Paris 프랑스)




오전 관광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한식당 '서울오페라'로 이동 중 거리 모습과 건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그래 바로 여기가 파리야!"라고 생각하며 좌우를 살피며 걷는 중 먼 발치에 왕궁같은 화려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이 저 건물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 점심식사를 반납하더라도 다녀 오리라" 마음 먹고 조금더 걸으니 '서울오페라'에 도착했다. 식당 위치만 확인하고 곧바로 목표지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몇년 전 스페인 톨레도라는 작은 도시에서 점심을 반납하고 나홀로 관광을 한 경험이 있는 터라 기대를 갖고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그런데 나와 여행 스타일이 비슷한 광주광역시에서 오신 성격이 매우 좋으신 사모님 한 분이 따라나섰다. 사모님 남편분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 은근 부담은 되었지만 혼자보다는 낳을것도 같다는 생각에 동행했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기록에 남기는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의 즐거운 추억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거리가 바로 오페라 거리다.

오페라거리가 이처럼 아람답게 변모한 것은 1852년 쿠데타로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 3세의 과감성있는 도시 구조 개혁 계획 때문이다.




나폴레옹 3세가 1846년부터 1848년까지 영국에 망명하여 체류하고 있던 시절인 대화재로 인해 재건된 계획적인 도시 런던을 본 후, 런던을 능가하는 파리의 재건설을 생각해 왔다고 한다. 그러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새로운 파리 건설에 착수하기로 하고 1853년 6월 22일 조르주 외젠 오스만 남작(Baron Georges-Eugène Haussmann)을 센 강 지역의 지사(Préfet de la Seine)로 임명하여 그에게 파리의 도시 구조 개혁을 지시하면서 부터 오늘 이 거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 위치도>




↓↓오페라 광장은 지하철 오페라 역이 있는 광장으로 오페라 거리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광장 북쪽에 바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광장을 굽어보며 서있는데, 궁전처럼 화려한 건물 상단 중앙에 황금색으로 새겨진 ‘ACADEMIE NATIONALE DE USIQUE‘ 글자가 선명하다.

오페라 광장에서 바라보는 '팔레 가르니에'의 정면 파사드는 고전주의 구조물이지만 조각상과 다양한 바로크 장식으로 덮여 있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화려한 오페라 극장
오페라 가르니에 Opéra Garnier


오페라 가르니에를 짓기 위해 1860년에 디자인 콩쿨이 개최되었는데 171명의 응모자 중에서 샤를 가르니에(Charles Garnier)의 작품이 뽑혀서 그의 설계로 건축이 시작되었다. 가르니에는 그 당시 유행하던 그리스풍 고전주의를 타파하고 화려하면서도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내려고 했으며, 그 결과 고전에서 바로크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된 호화로운 건물로 완성되었다.
오페라 가르니에는 1978년까지 오페라 극장(Académie Nationale de Musique-Théâtre de l’Opéra)이라고 불렸고, 그 후 국립 오페라 극장(Théâtre National de l’Opéra de Paris)이라고 불렸으나, 1989년 이후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이 생기면서 건축가의 이름을 따서 오페라 가르니에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름도 바뀌고 오페라단이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으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페라 가르니에는 파리의 오페라 극장으로 유명하다.
화려하게 꾸며진 내부 장식은 오페라 공연을 보지 않는다 해도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내부 장식은 외부 장식보다 훨씬 호화로운데 높이 30m의 천장까지 뚫려 있는 홀과 중앙의 큰 계단이 가장 볼거리이다. 무대는 안 길이 24m, 폭 50m로 한 번에 450명이 춤출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 또한 관객 2,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이다.





↓↓오페라광장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건물 지붕에 청색의  돔과 돔 지붕위에는 하프를 든 아폴론 상이 보인다.





↓↓그리고 파사드 중간 원형 기둥 사이에는 서쪽에서부터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다니엘 오베르(Daniel Auber),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가스파레 스폰티니(Gaspare Spontini), 자코모 마이어베어(Giacomo Meyerbeer), 프로망탈 알레비(Fromental Halévy) 등 7명의 작곡가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팔레 가르니에' 정면에 설치된 조각 위치도 (자료화면)





↓↓특히 지붕 위 양쪽에는 황금빛 찬란한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는데, 왼쪽은 샤를 귀메리(Charles Gumery)의 <조화와 자유>이고,

오른쪽(동쪽)은 엠므 밀레(Aimé Millet)의 작품인 <시와 음악 Poetry and Music>이다.





↓↓정면 가장 오른쪽에 설치된 조각상 '서정적 드라마(Perraud Lyric Drama)'






↓↓설치 당시에는 심한 수난을 당했지만 지금은 오페라의 대표 조각이 된 조각가 까르뽀(Jeen-Baptiste Carpeaux)의 대표작 '춤(La Danse)'.

이 조각품은 탬벌린을 든 나신(裸身)의 한 남자를 역시 나신인 여러명의 여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그 구성상 보기에 따라 약간은 외설(猥褻)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조각을 설치하자 파리 시민들은 이런 측면만 보고 자신들을 모욕하는 작품이라 하여 잉크를 던져 훼손하는가 하면 퍼괴 위협까지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페라의 대표 조각으로 유명해져 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조각은 벨몽도(Belmondo)라는 사람이 만든 모조품이다. 진품은 작품 보호를 위해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져 보관 전시되고 있다.





↓↓피사드 아래에 있는 7개의 아케이드 사이 기둥 상단에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Giovanni Pergolesi),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도메니코 치마로사(Domenico Cimarosa) 4명의 작곡가 얼굴들이 원형 장식 안에 새겨져 있어 이곳이 음악의 전당임을 알려주고 있다.





↓↓좌측 조각상 'Guillaume Instrumental Music'





↓↓좌측 조각상 'Jouffroy Poetry'





↓↓좌측면 작은 돔.





↓↓오페라거리 오른쪽 건너편에 위치한 방돔광장 Place Vendôme
나폴레옹이 오스텔리츠(Austerlitz)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여 로마의 트라야누스 기념탑(Trajan’s Column)을 본떠서 세운 44m 높이의 기념탑인 방돔 기둥(la Colonne Vendôme)이 보인다. 이 기념탑은 전투에서 획득한 133개의 대포를 포함하여 유럽 연합군에서 빼앗은 대포를 녹여 만들었으며, 기둥에는 나선형으로 무늬가 있는데 조각가 베르제레(Pierre-Nolasque Bergeret)가 전투 장면을 새겨 놓은 것이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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