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travel/Morocco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 여행 #2-모로코 카사블랑카(1)

수지인 2014. 2. 3. 23:00

17시간의 비행과 2시간의 환승 대기, 거의 하루가 걸려 모로코 카사블라카공항에 도착했다.

이 지역은 우기다. 여행 전 노심초사하며 현지 날씨를 모니터하는 내내 비오는 날이 더 많아 많은 우려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팀 여행길은 좋은 날씨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비는 피해갈 거라는 은근한 기대를 했건만 카사블랑카 공항에 내려 전세버스로 이동하는 것 조차 허용치 않을만큼 거센비가 뿌린다.

그러나 비는 금새 잦아들고 햇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다시 내리기를 반복한다.

전세버스가 공항을 빠져나오는 동안 제주가 고향이라는 현지 가이드 김모양이 요즘 모로코 날씨가 이상하단다.

언제나 잔잔하기만 했던 대서양이 성이 잔뜩 난 상태란다.

은근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희망적인 이야기도 덧붙인다.

스-포-모여행에서 카사블라카로 들어와 바를셀로나로 나가는 일정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설명이다.

이유인즉 스-포-모 중 아프리카에 속한 나라 중 잘 산다는 모로코는 아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를 거쳐 이베리반도로 올라가면 좋을 거라는 것과

품격 여행이어서 같은 길을 왕복하는 일도 없고 일정 구간은 항공이동이어서 그만큼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양의 말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는데 불과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이쯤에서 모로코와 카사블랑카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더듬고 갈 시간을 갖어야겠다.

  

모로코((Kingdom of Morocco)
공식명칭 : 모로코왕국(Kingdom of Morocco)
인구 : 30,275,000
면적 : 710,850
수도 : 라바트
정체·의회형태 : 입헌군주제, 양원제
국가원수/정부수반 : 국왕/ 국왕
공식 언어 : 아랍어
독립년월일 : 1956. 3. 2
화폐단위 : 모로코디르함(Moroccan dirham/DH)

 

 

수도는 라바트이다. 북동에서 남서의 최대길이는 1,328km이고 동서 최대너비는 764km이다. 동쪽과 남동쪽은 알제리, 남쪽은 서사하라와 접해 있으며, 북쪽은 지중해, 서쪽은 대서양에 면해 있다. 면적 710,850㎢(서사하라 합병지로 논쟁된 지역 252,120㎢ 포함), 인구 31,690,000(2009 추계, 서사하라 405,000명 포함).

 


모로코는 지금은 베르베르인으로 알려졌지만, 좀더 정확하게는 아마지그인 토착 유목민들의 전통적 거주 지역이다. 모로코는 대규모 이민에 영향을 받아서 원래는 그 지역 밖에서 와서 정착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오랫동안 도시 공동체를 이루었던 지역이다. 매우 이른 시기부터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던 이 지역은 나중에는 로마 제국이 정복했던 가장 서쪽 지역이 되었다. 7세기 후반 아랍 정복이 이어지면서 북아프리카로 확대된 지역은 아랍어로 서쪽을 뜻하는 마그리브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지역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그 후 이어진 모로코 왕국들은 북아프리카 해안지역을 넘어 확대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11세기에 북아프리카 원주민들인 아마지그가 세운 최초의 왕조인 알모라비데는 안달루시아('남쪽'이라는 뜻) 스페인으로부터 사하라 사막 이남의 몇몇 아프리카 지역까지 확장된 제국을 통치하게 되었다. 모로코에 영구적인 발판을 구축하려는 유럽인들의, 15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몇 차례 시도는 대부분 격퇴당했다. 하지만 나중에 모로코는 19세기 열강 정치 세력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모로코는 1912년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으나, 1956년 다시 독립을 얻었다. 모로코는 오늘날 북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유일한 왕조이다.

 


모로코는 빠르게 현대화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었지만, 많은 고대의 건축물과 전통적 관습을 보존하고 있다. 대서양의 주요한 항구인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이 도시는 모로코 산업과 상업의 중심지이다. 수도 라바트의 북쪽으로 대서양 연안이 가깝다. 다른 항구도시들로 지브롤터 해협에 면해 있는 탕헤르, 대서양에 면해 있는 아가디르, 지중해에 면해 있는 알호세마가 있다. 페스 시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훌륭한 재래시장인 수크로 유명하다. 아름답고 비옥한 모로코는 모로코 출신의 중세시대 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격찬에서 그 장점이 잘 드러난다. 그는 "온갖 과일들이 풍성하고, 흐르는 물과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 절대 바닥나지 않을 것이라는 면에서 모로코는 최고의 나라이다."라고 기술했다.
 

 

카사블랑카[Casablanca]
모로코 왕국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항만 도시.
카사블랑카는 하얀 집'이라는 뜻으로 아랍어로는 다르엘베이다(Dar el-Beida)라고 한다. 카사블랑카는 베르베르인의 어항으로 1468년 파괴된 고대 도시 안파의 자리에 포르투갈인에 의해 건설되어, 1757년 모로코 술탄에게 점령되었다. 18세기 후반에 무역항으로서 재건되어 19세기에 유럽과 미국의 무역업자가 정착하였고, 1906년에는 무역액이 탕헤르를 앞질러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었다. 1907년 프랑스가 점령, 1912년 이후 료티 원수(元首)의 통치하에서 근대적인 항만과 도시가 건설되었다. 아프리카 북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상공업의 중심지이다.
모로코 공업 생산의 90%가 이 도시와 주변에 집중되어 있고, 수도 라바트로 통하는 도로연변의 동부와 북동부는 공업지대를 이룬다. 모로코 수출입 무역의 3/4이 통과하고 국제공항이 있으며 철도·도로망의 중심지이다. 항만 근처에 ‘구(舊)메디나’라는 옛 아랍 시가가 있으며,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성벽,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 흰 벽의 가옥들이 바깥쪽을 둘러싸듯이 건설된 근대적인 시가(프랑스의 도시계획에 의해 건설)와 대조적인 경관을 이룬다. ‘구메디나’에는 유대인이 살며 이슬람교도인 서민들은 새 시가지의 바깥쪽에 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1월 연합군의 정상회의(카사블랑카회담)가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접어들자 영화 '카사블랑카'의 낭만적인 도시를 상상했던 꿈은 지워야만 했다.

       가이드 아가씨의 설명이 필요없은 정도로 음침하고 우리와 다른 분위기에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필자의 생각을 접게 하기에 충분하다.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의상과 행색이 나를 압도하고 있다. 

 

 

 

>>곳곳에 붉은색 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낮설고 어딘지 정이 안간다. 우리 세대는 붉은기는 인공기라고 하는 북한기가 상기돼 그런것 같다.

모로코 국기역시 붉은 바탕에 '슐레이만의 별'이라는 초록색 5각 별이 들어가 있다.

적색 바탕은 모하메드왕조 혈통의 순수성을 나타내며, 슐레이만의 별 초록색은 '평화'를 상징한다.

초록색 5각은 '이슬람 5주'를 의미한다.

 

오주(五柱)란 무슬림으로서 지켜야 할 5대 덕목으로 무함마드의 가르침 중에 나타난 5가지 의무이다.

증언 또는 고백(샤하다)나는 알라 이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합니다. 또 나는 무함마드가 알라의 사자임을 증명합니다를 입으로 왼다. 신도는 어릴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증언을 고백하게 되어 있다.

 

예배(살라트)일정한 시각에 규정된 형식에 따라 행하는 예배를 말하며, 개인적으로 수시로 행하는 기도는 두아라고 부른다. 예배는 하루에 다섯 번을 일출·정오·하오·일몰·심야에 하며, 특히 금요일 정오에는 모스크에서 집단예배를 행한다. 예배를 드릴 때는 반드시 메카가 있는 쪽을 향하고 행한다.

 

희사(자카트) 또는 천과(天課)국가재정의 근간을 이루며, 비이슬람 국가에서는 선교기반이 이루어지는 데 필요불가결한 무슬림의 의무중의 하나이다. 세금은 년 수입의 2.5%.

 

단식(샤움)성년인 무슬림은 매년 라마단 월간(月間9) 주간(晝間)에 음식·흡연·향료·성교를 금하고, 과격한 말을 삼가며 가능한 한 코란을 독송한다. 단 음식은 흰실과 검은실의 구별이 안 될 만큼 어두워진 야간에는 허용된다. 라마단 월이 끝난 다음 새 달이 하늘에 떠오르면 단식완료의 축제가 시작되는데, 화려한 의상을 입은 군중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서로 축하하는 풍습이 있다.

 

순례(하주)모든 무슬림은 매년 하주의 달(이슬람력 제12)에 카바 신전 부근 또는 메카 북동쪽 교외에서 열리는 대제(大祭)에 적어도 일생에 한 번은 참가할 의무가 있다. 능력이 없는 자는 하주를 못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해에 따라 일정하지는 않으나 현재도 매년 약 20만 명에 달하는 신도가 하주에 참가하고 있다. 메카 다음가는 성지는 메디나에 있는 무함마드 묘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 예루살렘의 여러 성적(聖蹟) 등이 있으며, 또 시아파()의 무슬림은 알리의 묘()가 있는 나자프, 알리의 아들 후세인의 묘가 있는 카르발라, 이란 동부의 마슈하드 등을 순례하는 사람이 많다.

 

 

↓아프리카에서는 잘 사는 나라에 속한다지만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카사블랑카의 테크노마트도 눈에 들어온다.

 

모로코를 여행하는 동안 일인독재국의 부익부 빈익빈은 쉽게 발견된다.

 

 

↓시민들로 활기가 있어 보이는 시내도 빛바랜 흰색과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서 정을 붙일만한 구석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시내에 도착해 첫 점심을 먹는다. 17시간 비행중 기내식만 4번을 먹었으니 벌써 된장찌개에 김치생각이 난다.

       모로코 현지식인 빵과 해물튀김, 야채샐러드가 입에 맞을리 없다. 향신료는 크게 거부감이 들진 않았지만 분위기와 음식의 모양새가 맘에 안든다. 

 

 

↓모로코 첫번째 관광에 나선다.

 

 

무함마드 5세 광장[Muhammad V Square]
카사블랑카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가장 번화한 곳이다. 시내 관광 및 쇼핑의 기점으로 반원형 돔이 길잡이 역할을 하는데, 광장 중앙의 분수대와 주위에 있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 건물들이 들어서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한 느낌이다. 
광장 앞 하얏트 리전시 호텔 1층에 위치한 "바 카사블랑카이(Bar Casablanca)"는 할리우드 영화 《카사블랑카》를 미국에서 찍을 때 배경인 "릭스 카페 아메리칸"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당시 영화 포스터, 주연배우들의 사진들이 1960년대의 복고풍 분위기를 한층 돋워주며 연중무휴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 늦더라도 여기는 꼭 가보고 싶었지만 음침한 거리 풍경과 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발목을 잡고 말았다. 물론 오랜 비행시간과 시차적응때문이기도 하지만....

 

무하마드 5세[Muhammad V,1909.8.10~1961.2.26]
모로코의 국왕(재위 1957~1961). 현 국왕 하산2세의 부친이다.
17세기 이래로 마그레브에 군림한 아라위왕조의 후손이다. 선왕인 유수프의 죽음으로 섭정이 되고(1927), 얼마 후 술탄이 되었다(1930). 그는 프랑스로부터의 완전독립을 꾀하며 민족운동을 지도하다가 코르시카섬으로, 이어서 마다가스카르섬으로 추방되었다가 1955년에 귀국하였으며, 1956년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조인(調印)으로 독립을 성취하고, 1957년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1961년 카사블랑카에서 아프리카 비동맹 중립계 5개국의 수뇌회의를 개최하여 카사블랑카 그룹을 결성하는 등 급진적 대외정책을 취하였다. 1961년 서거하였다.

 

카사블랑카 광장에는 유난히 비둘기가 많이 많다. 이유인즉 소득이 적어 마땅히 즐길거리가 없는 시민들이 가장 손쉽게 찾는 곳이 광장이고 값싼 비스켓 한 봉지면 비둘기와 놀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한 때 서울시청 옥상에도 비둘기가 많았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라 하지만 시민들에게 주는 피해도 적지않다. 비둘기의 배설물이 지독하기도 하거니와 깃털이 날려 호흡기 질환도 일으킨다고 한다. 모로코의 비둘기는 그래도 쓸모가 있다고 한다. 내일이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구 메디나 입구

       19세기의 아랍을 느낄 수 있는 곳, 구메디나 
      모하메드 5세 광장의 북쪽 해안에 축조된 옛 성벽으로 에워 싸인 곳으로 20세기 초까지는 이 메디나가 카사블랑카 시가의 전부였다. 지금은 모로코에서 가장 현대적인
     시가임을 자랑하는 카사블랑카이지만, 메디나에 오면 19~20세기초의 아랍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다. 규모가 작아서인지 관광객이 적고, 토산품보다는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가 많다. 

    

 

 

 

 

 

 

 

 

 

>> 모로코에 왔으니 모로코에서 쓰는 말 몇마디 배우고 갑니다.

인샬라 - '신의 뜻대로'예를 들어, “나는 내일 차를 사게 될 거야, 인샬라”, “내일 학교에서 만나자, 인샬라”라는 말은 “차를 사고 만나는 일이 내일 이루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신이 원한다면 이루어진다.”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샬롬 - 한마디로 '평화'를 의미한다. 영어로 peace로 설명될수 있는 샬롬은 히브리어.
비스밀라 - '알라의 이름'으로

어떤 장(場)을 여는 첫마디 '알함 드릴라'라고 하는데 '알라의 도움으로 만사형통'이라는 뜻이다.

 

실 생활에서 쓰는 몇마디

안녕하세요는 '샬라 와리꿈'(고전 인삿말은 '마앗살라마 알라이꿈')에 대한 응대는 '와리꿈 샬람'이다.
감사합니다는 '슈크란'
안녕히 계세요는  '마아 살라마 와 일랄리까'

죄송합니다는  '아~ 시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