某兄!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기에 매년 해외여행을 한번쯤은 하기로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려.
작년엔 어쩌다 보니 거르게 되었고
금년 들어 작년 몫까지 다녀 오려니 년초에 기회를 마련했소.
처가 동서 모임에서 그동안 미루어 왔던 장가계가 바로 그 곳이라오.
큰처형이 평소 거래하던 모두투어 서차장이 특별히 우리팀 10명으로 구성해준 품격상품이어서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이 기대 되더이다.
오후 세시 비행기인데 인천공항 미팅시간은 12시
전주에서 출발한 막내동서를 비롯 모두 미리 나와있었고,
유일하게 서울에 거주하는 우리 부부가 도착한 12시 정각에 모든 일행이 모이게 되었소.
모두투어 관계자로부터 일정표와 E_티켓을 건네받고 곧바로 출국수속을 마치니 보세구역에서 2시간 반이라는
널널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소.
우리를 여행지까지 데리고 갈 대한항공 KE819
멀리에서 보면 마치 장난감처럼 앙증맞은 모습이다.
그래도 120명은 넘게 타겠지요.
예정된 비행시간은 세시간
그러나 기상여건상 3시간 40분이 소요
장사 황화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5시 40분이다.
중국은 우리보다 한시간 늦으니 한시간 만큼 젊어진 셈이다.
현지 가이드와 미팅 후 전용버스로 30분쯤 이동하여 석식장소 도착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서호루"라는 거대 식당이다.
세계 최대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중국인
세계 최대를 위해 억지로 만들가는 그들은 과연 왜일까?
서호루는 돌아오는 날 다시 한번 찾아 전체를 둘러 보기로 하고
야경을 잠시 보기로 합시다.
서호루는 마치 커다란 관광지같은 느낌을 준다.
중국풍 건물에 잘 조성된 정원, 고급스런 조명 그리고 족히 수백대를 주차할 정도의 주차장이 갖추어져 있다.
블로그를 개설하고 2년이 채 안된 기간동안 이번이 세번째 해외여행이지만 이번 여행기록은 사진의 좋고 나쁨을
떠나 상세하게 기록을 남겨 이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얻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라도 되도록 별도의 카테고리로 만들기로 한다.
사진이란 동일 장소에서 동일 피사체를 담더라도 계절, 시간, 빛, 화각에 따라 느낌이 사뭇 달라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화각을 달리한 사진은 모두 올립니다.
아래 사진은 서호루 정문
정문 안에서 본 정문...마치 성과도 같다.
동양 최대....동시에 1만 2천명이 식사를 할 수 있다니....참 대단하다.
서호루 메인 건물인 백락궁(百樂宮) 앞에서 본 정문
메인건물 백락궁의 모습....3층이 모두 식당인데 1층이 메인홀이다.
우리 일행은 메인홀 무대 바로 앞에서 식사를 하도록 예약되어 있었고
손님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현지인들이 이용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보니 주차장에 파킹된 차들이 거의 벤츠나 BMW, 아우디 등 세계 유명 차들이다.
갑자기 현지식을 대하니 맛과 향료가 입에 맞질 않고
너무 짜서 별로 먹지 못하고 준비해간 보조 반찬과 숭늉을 우려 겨우 허기를 달랬다.
식사를 하는 동안 무대에서는 민속공연이 펼쳐진다.
잘 조성된 정원과 별궁의 조명이 현란하다.
이제 차창관광도 허용치 않는 밤길을 4시간씩이나 달려야 한다.
장사에서 장가계로 이어지는 320키로미터의 관광고속도로는 최고속도가 120키로미터/시간이지만 노면상태가 좋지않아 마치 시골길을 달리듯 덜컹거린다.
잠을 청해도 잠은 오지 않고 당장 내일 아침부터 시작될 여행지에 대한 정보라도 예습을 해 두기로 한다.
이번 여행지는 중국 호남성 장가계다.
호남성은 거대 호수인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호남성의 성도는 창사(장사, 중국어: 长沙, 병음: Chángshā)이며, 3,000여년의 오래된 역사를 가진 국가역사문화명성이며, 후난성 경제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
한자에서 알 수 있듯 장사는 긴 모래사구였던 연유로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창사는 진나라 때부터 중요한 도시였다. 750~1100년까지 창사는 중요한 상업 도시로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청 왕조하에 1664년부터 후난 성의 성도이자 주요한 미곡 시장이었다. 도시는 태평천국운동 때 포위당했으나 결코 함락되지 않았다. 창사는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혁명의 장소였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의 중일전쟁의 주요 전장으로 잠시 일본군에 점령되기도 했다. 1949년 이래로 재건되어 도시는 현재 주요한 항구이자 상업 공업 중심지이다.
1938년에 발생한 창샤 대화재로 인해 많은 문화재를 소실하였고, 설상가상으로 1939년부터 1944년동안 진행된 중일전쟁의 전쟁터가 되어 많은 문화재를 추가로 소실하였다.
이번 여행의 핵심인 장가계, 원가계, 천문산은 장자제시에 위치한다.
장자제(중국어 정체: 張家界, 간체: 张家界, 병음: Zhāngjiājiè)는 중국의 후난 성의 지급시이다. 면적은 9,516km², 인구는 165만 명(2007년)이다. 우링 산맥의 중앙에 있으며, 중국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여행 도시 중의 하나이다. 1982년 9월 장자제는 중국 제1호 국가삼림공원이 되었으며, 1988년 8월에는 무릉원(우링위안)이 국가 40여 곳의 중요풍경명승구로 지정되었다. 《장자제 국가삼림공원》, 《삭계욕풍경구》, 《천자산 풍경구》를 3대 풍경구로 지정하고, 《무릉원 자연 풍경구》와 더불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2009년 개봉영화인 아바타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유럽관객들의 발길도 늘고 있다.
지금의 장자제는 진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한나라와 삼국시대에 무릉원은 무릉군의 땅이었다.
원래 장가계로 불리운 지역은 장자제 국가삼림공원지역이었던 것 같다. 장씨 가문이 터를 잡고 살았다 해서 장가계라 불리웠고, 원가계도 원씨 가문이 살았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또한 장가계는 마모쩌뚱을 비롯 루사오치, 펑더화이 등 근대 중국사를 주도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마오쩌뚱의 고향은 장가계의 서남쪽에 위치한 사오산이다.
장사시에서 장가계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중간쯤에 좌측으로 도원(桃源)이라는 광광지가 있다. 상덕시에 속하는데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고장이라 한다.
원래 무릉도원[武陵桃源]이란 말은 陶淵明(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가상의 선경(仙境)인데 장가계의 무릉[武陵]과 상덕의 도원[桃源]을 합쳐 생겨난 말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잘 알다시피 무릉도원 [武陵桃源]이란 말은 가상의 선경(仙境). 중국 후난 성의 한 어부가 발견하였다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낙원이다. ‘별천지(別天地)’나 ‘이상향(理想鄕)’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桃花源記 序文(도화원기 서문)
陶淵明(도연명)
晉太元中 武陵人捕魚爲業 緣溪行 忘路之遠近 忽達桃花林.
(진태원중 무릉인포어위업 연계행 망로지원근 홀달도화림.)
진나라 태원년간에 무릉 사람으로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물길을 따라 갔다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도 모를 무렵 홀연히 복숭아꽃 숲이 눈앞에 나타났다.
來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
( 내안수백보 중무잡수 방초선미 낙영빈분.)
양쪽 강을 끼고 수백 보의 거리에 온통 복숭아나무뿐이며 다른 잡목은 하나도 없었다.
또한 향기로운 풀들이 싱싱하고 아름답게 자랐고 복숭아 꽃잎이 펄펄 바람에 날려 떨어지고 있었다.
漁人甚異之 復前行 欲窮其林. 林盡水源便得一山. 山有小口 髣髴若有光. 便舍船從口入.
(어인심이지 부전행 욕궁기림. 임진수원편득일산. 산유소구 방불약유광. 편사선종구입.)
어부는 이상하게 여기고 계속 앞으로 나가 복숭아 숲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했다. 숲은 강 상류에서 끝났고 그곳에 산이 있었으며,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고 그 속으로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어부는 즉시 배에서 내려 동굴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初極狹 纔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良.
(초극협 재통인 부행수십보 활연개량.)
동굴은 처음에는 몹시 좁아 간신히 사람이 통과할 수 있었으나 수십 보를 더 나가자 갑자기 탁 트이고 넓어졌다.
土地平曠 屋舍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 鷄犬相聞.
(토지평광 옥사엄연 유량전미지상죽지속. 천맥교통 계견상문.)
其中往來種作男女衣著 悉如外人 黃髮垂髫 竝怡然自樂.
(기중왕래종작남여의저 실여외인 황발수초 병이연자락.)
토지가 평평하니 넓고 집들이 정연하게 섰으며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사방으로 길이 트였고 닭과 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마을에서 오가며 하며 농사를 짓는 남녀의 옷차림은 다른 고장 사람들과 꼭 같았으며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다들 즐거운 듯 안락하게 보였다.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鷄作食.
(견어인 내대경 문소종래 구답지 편요환가 설주살계작식.)
사람들은 어부를 보자 크게 놀라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어부가 자세히 대답하자 그들은 어부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술을 내고 닭을 잡아 대접을 했다. 다른 마을 사람들도 어부가 왔다는 말을 듣고 와서 저마다 물었다.
自云: 先世避秦大亂 率妻子邑人來此絶境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자운: 선세피진대란 솔처자읍인래차절경불부출언 수여외인간격.)
問今世何世乃不知有漢 無論魏晉. 此人一爲具言 所聞皆歎惋.
(문금세하세내부지유한 무론위진. 차인일위구언 소문개탄완.)
집 주인이 "우리 선조가 진나라 때의 난을 피해 처자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이 절경(絶境)으로 와 다시 나가지 않았으므로 결국 바깥세상 사람들과 단절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이 어느 때냐고 묻는 것을 보니, 그는 한나라가 있었다는 것은 물론이고 그 뒤로 위나라와 진나라가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다고 하였다. 어부가 지난 역사를 하나하나 자세히 이야기해 주자 모두들 놀라며 감탄했다.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 停數日 辭去.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道也.
(여인각부연지기가 개출주식. 정수일 사거. 차중인어운: 부족위외인도야.)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어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술과 밥을 대접했다. 어부는 며칠을 묵은 후 작별하고 떠났다. 마을 사람들이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旣出 得其船 便扶向路 處處誌之. 及郡下 詣太守 說如此.
(기출 득기선 편부향로 처처지지. 급군하 예태수 설여차.)
어부는 마을을 벗어나와 배를 얻어 타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군데 표식을 했다. 읍에 이르자 태수를 찾아 그대로 보고를 했다.
太守卽遣人隨其往 尋向所誌 遂迷不復得路.
(태수즉견인수기왕 심향소지 수미불부득로.)
태수는 즉시 사람을 파견하여 어부가 표식한 곳을 찾아가게 했으나 결국 길을 잃고 도화원으로 통하는 길을 찾지 못했다.
南陽劉子驥 高尙士也. 聞之 欣然規往. 未果 尋病終. 後遂無問津者.
(남양유자기 고상사야. 문지 흔연규왕. 미과 심병종. 후수무문진자.)
남양의 유자기는 고결한 은사였다. 그 소리를 듣고 기꺼이 몸소 나섰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 못하고 병들어 죽었다. 그 후로는 뱃길을 찾는 사람이 다시 없었다.
출처 : 중국한시인선_도연명/장기근 편저/석필
'Foreign travel > Chi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거계 여행[3]-천자산 (0) | 2012.02.23 |
---|---|
장가계 여행[2]-보봉호 (0) | 2012.02.23 |
중국 황산 여행[12] - 세째날(11월 13일) 오후 - 명청대 옛거리 (0) | 2010.11.19 |
중국 황산 여행[11] - 세째날(11월 13일) 오후 - 잠구민택 (0) | 2010.11.19 |
중국 황산 여행[10] - 세째날(11월 13일) 오전 - 시신봉에서 백야령[2] (0) | 2010.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