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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북유럽여행/러시아여행] 모스크바 #5 - 아르바트거리(Arbat St/빅토르최 추모벽)

수지인 2018. 10. 13. 01:00




8월 21일 (화요일)


Skypoint Hotel(모스크바) - 크렘린궁(Московский Кремль) - 붉은광장(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성바실리성당, 굼백화점) - 아르바트거리(Arbat St/빅토르최 추모벽) - 세레메티예보 국제공항(SU 026) - 상트뻬쩨르부르크 - 호텔






아르바트 거리 (Ул. СтарыйАрбат, 울리짜 스따릐 아르바트)

우리나라의 명동거리와 같은 곳으로 입구에서 외무성 건물까지 약 2Km정도이다. 거리가 생긴 것은 15세기이며 더 유명한 것은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이 이 거리 No.53 의 2층 집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옛날에 아르바트 거리는 귀족들의 저택이 한적하게 들어서 있던 곳으로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들이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한 곳이다. 주변에 각종 전문 직업인들이 모여들어 골목마다 목공골목, 대장간 골목, 과자와 빵 골목, 음식점 골목, 식탁보 골목 등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아르바트는 번화한 거리로 변모하여 한쪽에서 소규모의 악단이 연주를 하는가 하면,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노브이 아르바트 거리에는 외국 브랜드 상점과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 가게와 노점상 등이 있어 러시아의 현주소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아르바트 거리는 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이 가장 먼저 인 곳이자, 개혁과 개방의 거센 바람을 주도했던 곳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이 거리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혼이 숨쉬는 곳이다. 무명화가들의 고향이며 연극배우, 가수들의 안식처이자 전시장이고 무대이며 히피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1988년 "아르바뜨의 아이들"이라는 소설이 국내에 소개됐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었다.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재즈음악을 배경음악으로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모습으로 그림처럼 지나간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무명화가들, 배우들,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소년들, 노천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 친구들, 연인들, 모두 풋풋한 젊음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젊은이들의 자유 영혼이 숨쉬는 아르바트 거리 한쪽에는 우리에게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바로 ''빅토르 초이! 아르바트 거리 한쪽, 길이 100미터가 채 안되는 골목에는 빅토르 초이의 성전(?)이 있다. 이 골목은 초이가 무명가수일 때 노래를 부르던 곳이었다.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등진 이후 이곳은 초이를 위한 성전이 되었다. 골목 담벼락에는 초이를 기리는 낙서들과 사진으로 가득했다. ''초이를 사랑 한다.'' ''초이는 영원하다''. 같은 내용들이라고 한다. 한 구석에는 누가 갖다두었는지 싱싱한 장미꽃이 한다발 놓여져 있고, 담배불이 향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빅토르 초이는 한국인 3세로 아버지 쪽이 고려인이다. 락밴드 ''키노''를 이끌었고 글도 쓰고 영화도 만들었다. 영화를 사랑했던 초이는 영화를 직접 감독하고 출연까지 했으며,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의 노래 모두는 4장의 앨범으로 나왔다. 그 앨범 모두가 러시아 젊은이들의 가슴에 강하게 자리잡았고, 1991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자동차 사고로 요절하면서 그의 노래와 이야기는 신화가 되어 러시아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아르바트거리가 시작되는 내무성 건물



↓↓비가 내려 통행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러시아의 음유시인 불라트 샬보비치 오쿠자바(Bulat Shalvovich Okudzhava) 기념비




불라트 샬보비치 오쿠자바 (Bulat Shalvovich Okudzhava, 러시아어: Булат Шалвович Окуджава)


1924년 5월 9일 ~ 1997년 6월 12일)는 러시아의 시인이며 작곡자이자 가수이다.

오쿠자바는 1924년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노래를 직접 쓰고 부르는 러시아 음유시가의 개척자로 평생 200여 곡을 작곡하고 노래함으로서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와 더불어 잔나 비쳅스카야와 같은 음유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쿠자바가 어렸을 때 그루지야인 아버지는 소련공산당에 의하여 사형 당하였으며 아르메니아인 어머니도 감옥에서 18년간이나 복역하는 아픔을 겪어 일찍부터 독재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2차대전에 참전한 후 트빌리시 주립대학교에 진학하여 1950년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교사로 재직하다가 1956년 모스크바로 이주하여 몰도다야 그바르디야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작곡을 하고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서정적인 멜로디를 지적인 음성으로 부른 그의 노래는 70년대 말까지 공식적으로 출판되지 못하였으나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비공식적으로 녹음되어 여러 나라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쿠자바의 노래와 시는 1980년도에 들어 와서와 공식적으로 출판되었으며 1991년 [USSR State Prize]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1997년 6월 12일 파리에서 사망하였으며 모스크바의 바간코보 묘지에 묻혔다.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에 그를 추모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자료:위키백과]











↓↓정성들여 그린 훌륭한 작품들이 비를 맞고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다 좋지만 특히 눈에 들어오는 작품 5점....맨 처음 말 그림과 아래 4점.







↓↓알렉산더 푸쉬킨과 그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Monument to Alexander Pushkin and Natalia Goncharova) 동상

우리에게 잘 알려진 푸쉬킨의 시 한편 읇고 갑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1799-1837)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것

모든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것 그리움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법

모든것은 한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것




푸쉬킨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를 사이에 두고 '푸쉬킨'과 러시아로 망명한 프랑스 장교 '단테스'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되지요.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잘 정리해놓은 자료 링크합니다. 바로가기









↓↓빅토르최 추모벽

빅토르최 추모벽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이미 포스팅한 페이지를 참고 바랍니다.

픽토르초이 추모 그라피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