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토요일)
Hotel Ariston Fiuggi(호텔 조식) - 폼페이 - 중식(현지식) - 쏘렌토 - 카프리 섬 - 나폴리 - 호텔(석식)
로마에 도착한 첫날은 항공기의 지연도착, 공항 검색과 입국 수속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걸렸고, 일행 중 한명의 분실물 등 이런 저런 악재가 겹친 데다 해변에 위치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공항에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조용한 시골마을에 위치한 호텔까지 이동하다 보니 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이탈리아가 서울보다 7시간 늦는 시차를 감안하면 서울 집에서부터 꼬박 하루가 걸린 셈이다.
세계적인 체인망을 둔 유명 호텔을 제외한 유럽 호텔들이 대체로 그렇듯 우리가 묵은 Hotel Ariston Fiuggi도 시설은 상당히 낡았지만 호텔종업원의 한국어 실력도 제법이었고, 친절했다. 가장 좋은 점은 푹신한 오리털로 충진된 깔끔한 침구 덕분에 시차로 인한 불면의 짧은 수면이지만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이른 아침 눈을 떠 창문을 여니 시원한 아침 공기와 함께 새들의 축하송이 귀를 자극한다. 피우지 방문을 환영하는 듯 한 축하송 덕분에 호텔에 대한 서운함이 어느 정도 보상된 듯 했다.
Fiuggi는 로마 중심으로부터 동남쪽으로 약 90킬로미터 떨어진 아주 오래된 세계 2번째 슬로시티다. 슬로시티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고, 처음으로 지정된 도시도 이탈리아의 오르비에토다. 오르비에토는 피렌체로 이동 중 좌측 차창에 스치듯 지나친 천연요새 성곽도시 치비타(Civita)가 있는 도시로 슬로시티 중앙본부가 있다.
게다가 500년 전 신과 같은 인간 미켈란젤로가 바로 여기에서 휴양을 했다고 한다. 공기 좋고 물 맑고 새들의 합창 소리가 그칠 줄 모르는 작은 숲속 마을로 미켈란젤로가 걸었을 흔적을 찾아 나섰다.
↓↓공원 옆에 설치된 피우지의 옛 모습을 설명한 표지판. 피우지가 오래된 고장임을 증명하고 있다.
↓↓로마시내 관광이 있던 날. 조식을 마치고 나 홀로 산책에 나섰다. 호텔 옥상에서 조망하니 동북쪽 언덕에 오래된 듯 한 마을을 발견하고 무작정 길을 나선 것이다. 대충 방향만 잡고 고~고~. 한참을 가다보니 호텔 이름마저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작은 마을에서 설마 길을 잃을까? 그러나 돌아갈 길을 가급적 꼼꼼이 기억하면서 계속 언덕을 올랐다. 그런데 언덕을 오르며 지나온 동네를 뒤돌아보니 작은 동네가 아니다. 만약 어두워진다면 인적마저 끊겨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보였다.
↓↓목표지점으로 삼았던 언덕에 자리한 오래된 마을에 어느 정도 근접하여 뒤를 돌아보니 서쪽 하늘에 붉은 석양이 물들기 시작한다.
돌아갈 길은 잘 기억하고 있겠지? 그러나 벌써 골목을 몇 번씩이나 바꾸어 동네 깊숙이 들어왔다. 은근 걱정이 되어 조금이라도 덜 어두워지기 전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약간 규모가 큰 집들은 대부분 아담한 호텔들이다. 우리도 조금 올라와 전망이 좋은 호텔에 묵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올라왔던 길이 아니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가로등이 들어오고 호텔 식당에만 저녁식사를 하느라 분주할 뿐 거리에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언덕에서 지형을 보니 동네에 진입하는 길은 둘밖에 없었다. 동네로 들어와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다가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형태의 지형이다. 그렇다면 보도의 조가비 문양을 활용하면 될 거라는 확신이 섰다. 올라오면서 봤던 문양의 반대 방향으로 가면 동네 초입에 위치한 우리가 묵는 호텔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마을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도중 다른 팀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긴 했지만 길을 찾는데 전혀 도움은 되지 못했다.
↓↓한참을 내려오니 올라왔던 길이 나왔다. 휴~ 안심이다. 주변은 인기척도 들리고 카페와 기념품 판매점, 작지만 필요한 건 다 갖춘 편의점도 보인다.
잃었던 길을 찾고나니 여유가 생겨 가게도 기웃거렸다.
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조금 넘었다. 아내는 걱정도 안한 눈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니…….ㅎㅎ.
그러나 나는 조금은 긴장했었고 아내한테 걱정 들을까봐 길을 잃었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새들의 합창 모닝콜에 약간 쌀쌀하지만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찾아 호텔을 나섰다. 식사 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은 지금까지 여행 경험으로 남이 누리지 못하는 특별한 덤이다. 가급적 많은 골목을 걸었다. 혹시나 미켈란젤로의 흔적을 찾을 수도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엊저녁에 갔었던 언덕 위 고풍스러운 마을을 호텔 옥상에서 당겨 카메라에 담았다.
↓↓언덕에 자리잡은 동네 풍경들.
↓↓피우지(Fiuggi) 마을 초입 도로 모습이다. 아침시간이라고 하지만 개마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다.
보도의 조가비 문양이 엊저녁 길 잃은 양을 우리로 인도했다. 아래 보이는 방향이 언덕으로 오르는 방향이다.
↓↓호텔 주변 산책로
↓↓우리가 3일간 묵었던 Hotel Ariston Fiuggi 뒷부분
↓↓동네 입구의 안내 간판
슬로시티란 무엇인가?
1999년 10월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의 파올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 전 시장을 비롯한 몇몇 시장들이 모여 위협받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의 미래를 염려하여 ‘치따슬로(cittaslow)', 즉 슬로시티(slow city)운동을 출범시켰다. 그러니까 이 운동은 슬로푸드 먹기와 느리게 살기(slow movement)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슬로시티운동을 왜 하나? 이렇게 물으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우리는 다르게 산다는 운동이다. 속도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한 형태로 빠름이 주는 편리함을 손에 넣기 위해 값비싼 느림의 즐거움과 행복을 희생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하는 슬로시티의 철학은 성장에서 성숙, 삶의 양에서 삶의 질로, 속도에서 깊이와 품위를 존중하는 것이다. 느림의 기술(slowware)은 느림(Slow), 작음(Small), 지속성(Sustainable)에 둔다.
슬로시티운동은 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이 섬기는 ‘속도 숭배’를 ‘느림 숭배’로 대체 하자는 것이 아니다. 빠름은 짜릿하고 생산적이고 강력할 수 있으며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도 한국은 가난하게 살았을 것이다. 문제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아니라 빠름과 느림, 농촌과 도시, 로컬과 글로벌,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조화로운 삶의 리듬을 지키는 것이다. 슬로시티 운동은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과 정보 시대의 역동성을 조화시키고 중도(中道)를 찾기 위한 처방이다.
속도가 중시되는 사회에서 슬로시티 프로젝트가 비현실적인지는 몰라도 1999년 국제슬로시티운동이 출범된 이래 현재(2016년 7월)까지 30개국 225개 도시로 확대되었으며 한국도 10개의 슬로시티가 가입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전남 신안군, 완도군, 담양군, 경남 하동군, 충남 예산군, 경기 남양주시, 전북 전주시, 경북 청송군, 강원 영월군, 충북 제천시가 가입돼 있다.
참고자료
· 한국슬로시티본부 홈페이지 http://www.cittaslow.kr/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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