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travel/Vatican City

[해외여행] 늦깍이 서유럽기행 #4 이탈리아/로마/바티칸박물관<2>

수지인 2017. 6. 3. 01:00

 


 5월 19일 (금요일)

 바티칸시국(바티칸박물관-시스티나성당-성베드로성당)-중식-번츠투어(트레비분수-스페인광장-판테온신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로마시청광장, 청사-포로로마노-진실의 입-대전차경기장-콜로세움)-호텔(석식)




↓↓이집트 화강암으로 만든 이집트 석상



촛대의 복도 Galleria dei Candelabri

시스티나 성당으로 가는 중간 복도

시스티나 성당으로 가려면 복도를 거쳐 지나가야 하는데 각 복도마다 이름이 있다. 우선 지금 보게 될 ‘촛대의 복도’, ‘아라찌의 복도’, ’지도의 복도’ 등을 지나 ‘소비에스키 방’을 거치면 ‘라파엘로의 방들’에 가게 된다. 그 다음이 ‘시스티나 예배당’이다.

왜 ‘촛대의 복도’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아치형의 중간 중간 문마다 양 옆에 촛대 모양의 조각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촛대의 방은 1761년에 만들었다. 이 복도에는 로마 시대, 헬레니즘, 그리스 시대의 상당히 많은 작품들(기원전 3세기에서 1세기경)이 전시되어 있다. 이 복도의 이름을 짓게 만든 촛대들은 2세기의 작품들이다.


이 방을 지날 때는 반드시 천장을 보아야 한다. 1883년에서 1887년 사이에 그린 천장화인데 입체감이 대단해서 아래에서 보면 조각 장식같이 원근감이 뛰어나다.



↓↓다산의 여신상



↓↓아름다운 천정화와 장식들






↓↓마치 융단을 보는듯한 바닥 대리서 모자이크


↓↓대리석 석관




벽걸이 융단으로 장식된 아라찌의 복도 Galleria degli Arazzi

아라찌(Arazzi)는 벽걸이용 융단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카펫을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유럽은 카펫 사용이 많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대개 바닥을 대리석이나 석재로 마감하고 카펫을 깔아도 냉기가 그대로 올라온다.

그래서 아라비아 상인들로부터 가져온 카펫을 바닥에 깔기보다는 벽에 걸어 두었는데, 이것이 또 예술적 가치가 있다. 바람이라도 살랑 불면 카펫이 흔들리면서 카펫의 무늬들이 입체로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카펫을 이용한 예술이 발달했다.

여기 있는 카펫들은 1523~1534년 사이에 만든 것이다. 원래는 시스티나 예배당에 있었는데 1838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내용은 당연히 성화다.



↓↓조각처럼 보이지만 천장의 그림이다.


↓↓아라찌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카펫


↓↓아라찌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카펫


↓↓아라찌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카펫


↓↓아라찌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카펫


↓↓아라찌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카펫


↓↓아라찌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카펫


↓↓아라찌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카펫


↓↓원근법이 뛰어나 조각처럼 보이지만 실은 천장의 그림이다.


↓↓아라찌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카펫


↓↓아라찌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카펫


↓↓아라찌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카펫



바티칸의 아름다움의 상징 지도의 복도

온통 황금색으로 치장한 천상의 세계로 착각할 듯한 이 복도의 길이는 약 120m, 너비는 6m이다. 1578년에 착공해서 1580년에 완성했다. 이 복도 양 벽에 이탈리아의 지도가 지역별로 그려 있다. 이 지도를 그리는 관점은 교황이 지배하는 총 40개의 성당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벽에 그림을 그렸다. 이 지도들은 ‘이냐지오 단티’(Ignazio Danti)라는 신부의 지휘 아래 수많은 화가들이 돌아가면서 의무적으로 벽화를 그렸다. 1580~1583년까지 4년 동안 작업한 것이다.


↓↓자도의 복도에서 양편에 전시된 지도는 보지않고 모두 천장만 쳐다본다. 바닥도 놓쳐서는 안될 볼거리다.


↓↓그림이 같아보이지만 다른 그림들이다.






↓↓이탈리아지도


↓↓지동의 방이 끝나는 지점에 기념판매대가 나온다.



라파엘로의 벽화가 가득한 곳 라파엘로의 방들

왜 ‘라파엘로의 방들’이라고 명명했을까? 라파엘로가 여기서 살았나? 그런 것은 아니다. 율리우스 2세(1503~1513)는 교황이 되자 보르지아에 있는 교황의 거처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 가 보니 온통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알렉산더 6세의 공적을 미화한 벽화로 가득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율리우스 2세는 이 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자 1400년대 중엽 이 건물 2층에 증축된 4개의 방으로 자신의 거처를 옮겼다. 2층으로 옮기니 이미 벽의 군데 군데에는 페루지노(라파엘로의 스승), 피엘로 델라 프란체스카 등이 벽화를 그려 놓았다. 이에 율리우스 2세는 자기가 살 방에 맞는 그림을 그려 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 예술 고문으로 바티칸에 있던 브라만테가 그 전부터 알던 라파엘로(1483~1520)를 추천한다. 이때 그의 나이가 20대 중반이었다. 이에 율리우스는 반신반의의 심정으로 ‘서명의 방’에 그림을 그려 보라고 한다.

이 약관의 젊은이는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에 흡족해하던 율리우스 2세는 그곳에 있는 벽화를 다 지우고 새로 그림을 그릴 것을 명했다. 그래서 라파엘로는 1508~1512년까지는 서명의 방을, 1512~1514년에는 엘리오도르의 방을, 1514~1517년까지는 보르고 화재의 방, 그리고 마지막으로 1517~1524년까지 콘스탄티누스의 방에 그림을 그렸다. 라파엘로가 1520년에 사망하자 나머지는 그의 제자들이 완성했다. 제자 중에 뛰어난 인물로는 줄리오 로마노와 프란체스코 펜니가 있다.



찾아볼 시간은커녕 눈에 들어오는 작품도 주마간산 격으로 훑고 지나왔는데도 벌써 약속시간이 다돼간다.

어쩌랴 모자람은 다른 방법으로 채울 수밖에…….

아쉬움을 남긴 채 약속된 장소로 달음질치듯 빠져나왔다.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

‘서명의 방’이라는 이름은 역대 교황들이 이 방에서 어떤 문서에 서명을 하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 방은 라파엘로가 제일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 방이다. 이 방의 주제는 바로 신의 덕망(성사 토론), 이성(아테네 학당), 아름다움(파르나조)이다. 이 중에서 우리는 〈아테네 학당〉이라는 그림이 우리에겐 가장 익숙하다.

〈아테네 학당〉은 이성을 통한 진리 탐구라는 의미가 있고 유럽 역사에서 이름을 남긴 쟁쟁한 학자들을 이 그림에 다 모아 놓았다.


↓↓그림의 이해를 돕기 위해 ENJOY 이탈리아 자료사진으로 대신한다.


중앙에 손가락을 위로 가르키며 나오는 사람이 플라톤인데 얼굴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얼굴이다. 바로 옆은 아리스토텔레스인데 손바닥은 수평이다. 플라톤은 이상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론을 뜻한다.

여기서 중앙의 13번은 실제 밑그림에 없던 그림이었다. 엑스선의 촬영 결과 나중에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를 덧붙였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얼굴은 학자들의 주장대로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이 부분은 학술적으로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