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travel/Spain

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 여행 #42- 중세풍 성곽도시 톨레도[Toledo]<1>구 시가지 산책

수지인 2014. 2. 27. 06:00

 

 

 


톨레도 [Toledo]
마드리드에서 남남서쪽으로 67㎞ 떨어진 지점에 있다. 타호 강으로 돌출하여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인 암석질의 갑에 있다.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는 이 도시를 가리켜 '우르브스 파르바, 세드 로코 무니타'(작지만 천연의 요새로 이루어진 도시)라고 기록했다. BC 193년 로마의 장군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에게 정복된 후 톨레툼이라는 이름으로 로마의 주요식민지이자 카르펜티아의 중심지가 되었다. 6세기에는 서고트 왕국의 왕궁 소재 도시였다. 이곳에서 유명한 공의회가 여러 차례 개최되었는데, 특히 제3차 공의회(589)는 레카레드 왕이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을 선언한 중요한 공의회였다. 무어인들의 점령기간(712~1085)에는 한 중요한 모자라브 공동체(아랍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도들의 집단)의 본거지로서 툴라이툴라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1085년 알폰소 6세에게 점령당한 후 카스티야 왕국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스도교·아랍·유대 문화가 하나로 융합된 도시인데 그 대표적인 예로 13세기에 현명왕 알폰소 10세에 의해 설립된 통역사학교인 에스쿠엘라데트라둑토레스를 들 수 있다. 1560년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를 수도로 선택한 이후 시의 중요성이 쇠퇴했다.

톨레도는 스페인 문화를 가장 잘 대변하는 곳으로 간주되어 시 전역이 국립기념지로 선포되었다. 도시가 암석지대에 건립되었기 때문에 소코도베르를 중심으로 펼쳐진 시가지가 좁고 구불구불하며 경사가 가파르고 지면이 울퉁불퉁한 것이 특징이다. 타호 강에는 2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북동쪽에 있는 알칸타라 다리는 중세의 산세르반도 성 기슭에 놓여 있는데, 이 성의 일부는 로마 시대와 무어 왕국시대에 건축되었다. 북서쪽에는 13세기에 세워진 산마르틴 다리가 있다. 성벽은 대부분 무어인이나 그리스도교도들에 의해 축조되었지만 서고트족이 축조한 것도 있다. 1085년에 알폰소 6세가 관례적으로 사용했던 푸에르타비에하데비사그라(10세기)를 비롯하여 여러 시대에 걸쳐 건축된 출입구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은 중요한 건축물로는 흥미로운 십자궁륭을 갖춘 비브알마르돔(크리스토데라루스, 10세기) 모스크와 라스토에르네리아스 모스크, 무데하르 양식(스페인과 이슬람의 혼합 건축양식)의 유대교 회당들인 산타마리아라블랑카 시나고그(12세기)와 엘트란시토 시나고그(14세기, 일부는 세파르디 박물관으로 쓰임), 무데하르 양식의 교회들인 산로만·크리스토데라베가·산티아고델아라발·산토토메 교회가 있다. 산토토메 교회에는 훌륭한 탑과 엘 그레코가 그린 〈콘데 데 오르가스의 묘지 Burial of the Conde de Orgaz〉가 소장되어 있는 예배당이 있다.

고딕 양식의 스페인 대성당들 가운데 가장 스페인적이라고 평가받는 이 시의 대성당은 1226년 페르난도 3세와 대주교 로드리고 히메네스 데 라다가 착공했다. 예술성을 갖춘 이 대성당의 많은 건축작품들 가운데 성가대석, 대형 레타블로마요르('커다란 제단 뒷장식'), 화려하게 장식된 돈알바로데루나 부속 예배당, 모자라브 예배당, 참사회의회장 등이 특히 뛰어나다. 또한 엔리케 데아르페가 제작한(1524) 일련의 성체용기(성체 현시대와 성체를 보관)와 엘 그레코, 고야, 반 다이크, 모랄레스와 그밖의 화가들이 그린 여러 점의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는 훌륭한 박물관도 있다. 정교하게 지어진 산후안데로스레예스 교회는 후안 과스가 이사벨라 양식으로 건축한 것이다. 같은 시대에 지어진 카사데라산타에르만다드는 현재 일부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6세기초 엔리케 데 에가스의 설계를 바탕으로 건축된 오스피탈데산타크루스가 복원되어 현재 주립 고고학·미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내를 굽어보며 우뚝 서 있는 알카사르(요새)는 1531년경 알론소 데 코바루비아스의 설계로 세워지기 시작했고, 프란시스코 비얄판도가 조경한 훌륭한 안뜰을 갖추고 있으며, 그 안에 군대 박물관이 있다. 1936년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이 요새의 방어는 스페인 내란중에 벌어진 가장 영웅적인 투쟁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밖에 아윤타미엔토(18세기초), 바로크 양식의 많은 교회들, 신고전주의 양식의 오스피탈델눈시오와 톨레도 중학교, 엘 그레코 저택 박물관과 타예르델모로 박물관, 현대적 양식의 아카데미아밀리타르데인판테리아 같은 건축물들과 공원 및 산책로들은 모두 이 시의 성가를 입증하는 것들이다.

톨레도에서 생산되는 강철과 특히 검(劍)은 오랜 시대에 걸쳐 명성을 얻어왔는데, 이미 BC 1세기 그라티우스 '팔리스쿠스'의 키네제티카에 언급되어 있다. 톨레도에는 중요한 무기공장과 다마스크강(鋼), 조각용 금속판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무데하르의 전통양식으로 장식된 금속세공품을 생산하고 있다. 특산품으로 아몬드와 설탕으로 만드는 크리스마스용 사탕과자인 마지팬이 있다. 인구 68,382(2001).<자료:브리태니커 >

 

↓↓우선 톨레도 전경 사진으로 시작합니다.

     위 지도의 노랑색 원으로 표시된 부분이 2세기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조성된 톨레도 구시가지입니다.

     사진에서 보듯 타호강(Rio Tajo)이 U字으로 돌아나가는 지형에 4면이 모두 절벽이어서 천혜의 요새입니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우측으로 돌아 전망대를 거쳐 구 시가지로 이동합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현대식 교량이 놓이기 전 동북쪽에 알칸다라 다리, 남서쪽에 산 마르틴 다리만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이동중인 차내에서 담은 알칸다라 다리입니다.

 

 

↓↓ 구 시가지 남측 언덕에 위치한 전망대를 먼저 들릅니다.

      톨레도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에 보이는 큰 건물은 알카자르((ALCAZAR)인데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본 우측 부분입니다.

 

 

↓↓전망대에서 본 중앙 부분입니다. 사진 우측 뾰족한 타워가 있는 건물이 대성당(CATEDRAL)입니다.

 

 

↓↓전망대에서 본 파노라마 사진입니다. Sony NEX-5R이 수고해준 사진입니다.

 

 

↓↓전망대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저씨입니다. 사진 찍어도 좋다고 했는데 흘끗 처다보는 순간에 찍혔군요.

 

 

↓↓다시 차를 타고 서측 방향 시내를 반바퀴쯤 돌아 하차지점인 PALACIO DE CONGRESOS에 내려 도보 투어를 시작합니다.

     아래 사진은 북쪽 방향에 위치한 PUERTA DE BISAGRA입니다.

 

 

여행을 준비하며 우연히 발견한 재미있는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노컷뉴스'여행수첩'에 게시된 글인데 글쓴이는 나와있지 않더군요.

 

 

이곳 톨레도에는 가슴 시린 슬픈 사연이 하나 있다.

스페인에는 이사벨 1세(1451~1504)라는 유명한 여왕이 있다.

바로 아라곤 왕국의 왕자인 페르난도 2세(1452~1516)와 세기의 결혼을 통해 분열된 스페인의 대통합을 이뤄낸 주인공이자, 이슬람 세력이 차지했던 그라나다를 정복해 오늘의 통일된 스페인을 만든 주인공이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포르투갈 왕국과 그라나다 왕국 그리고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 총 4개의 왕국이 나누어져 있었다.

이사벨이 카스티야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고, 동시에 아라곤 왕자에서 왕으로 등극한 페르난도 2세와 결혼을 한다.

소위 아라곤-카스티야 연합 왕국이 탄생한 것.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이사벨 여왕은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를 무너뜨리고 800년 만에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쫓아낸다.

이때부터 스페인의 무적함대 시대가 열린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시점, 이사벨 여왕은 시집올 때 가져온 패물을 콜럼버스에게 내주면서 신대륙을 발견하면 그 땅을 스페인에 바쳐 달라고 당부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사벨 여왕이 벤처 투자를 한 것이다.

스페인은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을 통치하면서 세계 강대국으로 우뚝 솟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과거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던 현재의 중남미 대륙에서는 아직도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남겼듯이 이사벨 여왕도 ''전쟁 일기''를 남겼다.

일기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이사벨 여왕은 아이를 낳고 싶어했다.

그러나 7척 장신의 멋쟁이 페르난도 2세는 즉위 초반 사냥만 하러 다닌다.

참다못한 이사벨 여왕은 남편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페르난도, 사냥은 잘되고 있습니까? 내가 안달루시아에서 보니까 아름다운 여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에 눈도 크고, 몸매도 예쁘고, 백옥같이 고운 손을 가진 여인들입니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여자들도 많습니다.

이곳 안달루시아로 오시면 좋겠습니다.

" 그렇게 해서 이사벨 여왕은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큰딸인 캐서린은 영화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헨리 8세(재위 1509~1547)와 결혼을 했고, 둘째 딸인 후안나는 합스부르크 왕가 막시밀리안 1세(재위 1493 ~1519)의 아들인 필리프와 결혼한다.

당시 남자 못지않게 전쟁터를 누볐던 이사벨 여왕은 ''후안 왕자''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결국, 후안 왕자는 14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여왕은 죽은 아들을 톨레도 대성당에 묻으며 "내가 죽더라도 하늘나라에서 아들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톨레도는 영원히 변화를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금도 톨레도는 개보수를 할 때 도시의 색을 마음대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덕분에 톨레도는 500여 년 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톨레도는 이사벨 여왕의 슬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게다가 톨레도 대성당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고딕 양식 성당 중 하나이며, 예술적 보물로 인정받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중 하나로 꼽힌다. <노컷뉴스'여행수첩'>

 

↓↓하차지점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PALACIO DE CONGRESOS 벽에 걸린 현수막 그림입니다.

 

 

 

↓↓개발의 여지가 남아있는 북쪽 방향인데 더 이상 개발을 막는지 더 이상 확장은 없어 보입니다.

 

 

↓↓소코도메르 광장으로 오르는 언덕길을 오릅니다.

 

 

↓↓세월이 느껴지는 집들로 안구 운동을 활발히 시킵니다.

 

 

↓↓소코도메르 광장입니다. 직진하면 알카자르로 이어지거 우측 골목으러 가면 대성당으로 이어집니다.

 

 

 

↓↓광장에서 가이드의 설명도 듣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마드리드에서 톨레도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변은 광활한 벌판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배경지이기도 하다.

       중간 휴게소 기념품가게에 진열된 상품도 이 지방의 특색을 살린 상품들이 많았다.

       바로 이 광장에도 소설 속의 이야기를 모자익으로 새겨 벤치를 만들었다. 그 중 몇 점만 모아보았다.

 

 

 

 

 

↓↓광장을 파노라마로 담았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각종 상점과 호텔들이다.

 

 

↓↓기념품가게 앞에 기사의 갑옷이....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길 좌우가 모두 예쁜 상점들이어서 지루함을 느끼지않고 걸을 수 있다.

 

 

↓↓골목 바닥에 톨레도 지도를 그려놓았다.

 

 

↓↓지금까지 이런 좁은 골목을 많이 보고 걸어서인지 이제 익숙해졌다.

 

 

 

↓↓골목 사이로 첨탑이 보인다.

 

 

↓↓골목 한켠에 주차를 한걸 보니 이 골목은 그중 넓은 골목인가보다.

 

 

↓↓대성당에 다가온듯 첩탑이 가깝게 보인다.

 

 

↓↓좁은 골목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건물이 금방이라도 입마춥할 것처럼 가깝게 맞닿아 있다.

 

 

↓↓사진의 아랫부분 간판이 특이하다.

 

 

 

 

↓↓골목 중앙에 있는 이 쇠는 무엇에 쓰이는 물건일꼬? 차량 통행 금지시간에는 여기서 쇠막뚝이 올라온다고 한다.

 

 

↓↓거리의 악사도 중세풍이군요.

 

 

↓↓시간을 거슬러 걷고 또 갇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게 귀해보이는걸 보니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봅니다.

 

 

다음 편에서는 대성당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