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산책삼아 집에가지 걸어서 가보자.
보통 걸음으로 한시간이니
쉬엄쉬엄 카메라 산책을 한다해도
두시간이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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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피서나온 시민들
가족과
혹은 연인과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채 더위를 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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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다리...시장 천막의 이미지를 막구조로 적용하여 동대문 재래시장의 역사성 및 향수 연출
↓↓나래교...청계5가 동대문패션타운과 평화시장을 잇는 다리
나비의 힘찬 나래짓을 이미지화 하였으며, 3차원 아치와 케이블로 나비형상화 유도.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의 다리로, 동대문 의류상권의 중심지역에 위치하는 교량.
인근 동대문 의류상권이 세계 패션 1번지로 비상하는 의미를 담음
↓↓오간수교....홀로, 둘이서
홍예문(紅霓門)으로 다섯 칸으로 되었다 하여 "오간수다리" 또는 "오간수문" 이라 하였다
- 이 다리는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 나가는 지점에 놓여 있던 다리이다.
즉 서울에 성곽을 쌓으면서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다섯 개의 아치형으로 된 구멍을 만들었고,
그 위로 성곽을 쌓아 올렸으며,
아치 모양의 구멍을 서로 연결하여 성벽 안쪽으로 장대석을 연결하여 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가 동대문 옆의 오간수문을 설치한 다리이므로 오간수다리라 불렀다.
이 오간수문은 물길이 잘 빠져가기 위해 가설한 것인데 조선시대에는
도성 안에서 죄를 지은 자가 도성을 빠져 달아나든가 혹은 밤에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의 통로로 곧잘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 예로 명종 때 전국적으로 사회를 흉흉하게 만들었던 임꺽정의 무리들이 도성에 들어와 전옥서를 부수고 도망갈 때도 이 오간수문을 통해 달아났었다.
이 다리는 1907년 일제가 청계천 물이 잘 흘러가도록 한다는 미명하에 오간수문을 모두 헐어버릴 때 함께 사라지고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되었다가
후에 성곽이 훼손되는 것과 함께 오늘날에는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마전교와 오간수다리 사이에는 조선시대 때 청계천의 하상을 준설하고 여기에서 나온 흙들을 쌓아 인공적으로 만든 산인 가산(假山)이 있었다.
↓↓맑은내다리....동평화상가 앞
나비의 힘찬 비상을 아치구조와 크로스 케이블로 조화시켜 힘찬 도약 연출, 패션 중심의 상징성 부여.
2013.07.29.
청계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