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travel/Sweden

[북유럽여행/스웨덴여행]스톡홀름#1 - Fjällgatan View point에서 본 스톡홀름

수지인 2018. 10. 26. 01:00



8월 24일 (금요일)


바이킹라인(VIKING LINE) - Fjällgatan View point - 감라스탄(Gamla Stan) - 바사박물관(Vasa Museum) - 스톡홀름 시청사(Stockholms stadshus) - 공원(Humlegården) 산책 -  팔룬(Falun) First Hotel Grand



북유럽의 베니스라 불리우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아침 이른 시간에 바이킹라인에서 내려 인근에 위치한 Fjällgatan 전망대에서 첫 대면.

아스라한 아침빛을 받은 스톡홀름 시내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바로 이 곳이 Fjällgatan전망대


조금전 하선한 바이킹라인이 우측 발아래 정박되어 있다.



스톡홀름(Stockholm)은 스웨덴의 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 반도 최대 도시이다. 많은 섬을 끼고 있어 "북방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린다. 회토리예트(Hötorget)에 위치한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는 매년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


스톡홀름’이라는 이름은 1252년 기록물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고 하는데, Stock은 통나무라는 뜻이고 holm은 섬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이름은 이 지역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멜라렌호(Mälaren Laken) 상류에서 통나무를 동동 띄워 땅에 닿는 곳에 도시를 짓기로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철광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멜라렌 호와 발트해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중요성 때문에 칼마르 동맹(Kalmar Union)의 덴마크 왕들 사이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1523년 구스타브 1세 바사(스웨덴어: Gustav Vasa) 왕이 즉위하며 중심 도시로서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하였고, 1600년까지 인구가 1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17세기 스웨덴이 북유럽의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1634년 공식적으로 스웨덴 왕국의 수도로 선정되었다. 무역법에 따라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스웨덴의 상인들이 꼭 거쳐가야 하는 독점 무역의 핵심 무대가 되기도 했다.


18세기에는 흑사병과 대북방 전쟁으로 인해 도시 일부가 파괴되는 등 침체기를 맞았으나, 여전히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로서 제 역할을 다 하였다.


19세기에 들어 다시 경제적 중심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구가 크게 늘었지만 자체 출생보다는 주로 이민에 의한 것이었다. 도시 영역이 확장되기 시작하여 새로운 지역들이 거주지로 개발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노동집약적 공장들이 도시 내부에 생겨났으며 공업 중심의 도시가 되었다.


19세기 초까지 스톡홀름은 왕궁이 있는 구시가지 감라스탄(Gamla Stan)과 그 남쪽의 쇠데르말름(Södermalm), 북쪽의 쿵스홀름(Kungsholm) 및 노르말름(Norrmalm), 외스테르말름(Östermalm)의 한정된 지역에만 있는 작은 도시였다. 그러다가 19세기 말부터 공업 발달로 인해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도시가 팽창하기 시작하여, 유르고르덴(Djurgården) 지역이 개발에 포함됐다. [지료: 위키백과]































스마트폰으로 담은 스톡홀름 파노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