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travel/Vatican City

[해외여행] 늦깍이 서유럽기행 #7 이탈리아/로마/성 베드로 광장 Piazza San Pietro

수지인 2017. 6. 6. 01:00

 


 5월 19일 (금요일)


 바티칸시국(바티칸 박물관-시스티나 예배당-바티칸 대성당-성베드로광장)-중식-번츠투어(트레비분수-스페인광장

-판테온신전-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로마시청광장, 청사-포로로마노-진실의 입-대전차경기장-콜로세움)

-호텔(석식)




성 베드로 광장 Piazza San Pietro


바티칸 광장이라고도 한다.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거장인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가 1656년 설계해 12년 만인 1667년 완공했다. 베드로가 순교한 곳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자, 베르니니의 대표적인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30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으며 수많은 순례자들이 주일 정오에 교황의 축복을 받기위해 이곳에 모인다.


광장이 들어서기 전 성당 앞은 수많은 집과 복잡한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힌 무질서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광장 조성 계획에 속도가 붙은 것은 교황 알렉산데르 7세 때로, 알렉산데르 7세는 교황으로 선출되자마자 곧바로 건축위원회에 광장 조성에 대한 논의를 하도록 명했다. 그리고 공사를 담당할 건축가로 당시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수석 책임자였던 베르니니가 선정되었다.


광장은 입구에서 좌우로 안정된 타원형이며, 가운데서 반원씩 갈라져 대칭을 이룬다. 좌우 너비는 240m이다. 정면 끝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입구에 해당한다. 반원형인 광장 좌우에는 4열로 토스카타식 원주 284개와 각주 88개가 회랑 위의 테라스를 떠받치고 있다. 테라스 위에는 140명의 대리석 성인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다.


회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온 세계 백성을 인자하게 두 팔로 안고 있는 인류의 어머니인 교회를 상징한다. 베르니니는 성 가톨릭교회가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고,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 베드로대성당의 돔을 머리로 두고 반원형의 회랑 두 개를 팔로 묘사함으로써 성 베드로 대성전이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여기에 더해 대성당 바로 앞에 있는 사다리꼴모양의 작은 광장과 열주랑이 둘러싼 타원형 광장이 합쳐지면서 광장의 전체적인 평면을 열쇠 구멍으로 구성해 초대 교황 성 베드로의 지물인 열쇠를 상징하는 효과까지 더했다.


  광장 중앙에는 로마의 3대 황제 칼리굴라(Caligula)가 자신의 경기장을 장식하기 위해 기원 후 37년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처음 가져왔을 때에는 경기장에 세워져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순교자들의 순교들 지켜보게 된다. 훗날 식스투스 5세(재위 1585~1590)가 경기장에서 죽은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1586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오벨리스크 꼭대기에 알렉산데르 7세 가문의 문장과 십자가를 장식해 그리스도가 박해로부터 승리했음을 선포했다.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약탈 문화재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인식될 만큼 많은 굴곡을 겪은 건축물이다. 높이는 25.5m, 무게는 320t이다.


오벨리스크 좌우에는 카를로 마데르나(Carlo Maderna)와 카를로 폰타나(Carlo Fontana)가 각각 만든 두 개의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베르니니는 분수가 타원의 초점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분수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지름 6~7m 정도의 검은 대리석 원반 표식(Centro del Colonnato)이 사방으로 박혀 있는데, 이 위에 서서 회랑을 쳐다보면 네 줄로 된 회랑이 맨 앞 한 줄만 보이고 나머지 세 줄은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그 원 위에서 걸음을 옮기면 나머지 세 줄이 갑자기 나타난다. 마치 거대한 기둥 세 줄이 마법에 걸린 것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다. 이 회랑을 설계한 베르니니의 치밀성과 천재성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한 예라 하겠다.


1981년 5월 13일에는 성 베드로 광장의 북서쪽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Paul II)가 터키 출신의 알리 아으자에게 저격당하는 암살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저격당한 위치는 현재 붉은색 반암으로 표시되어 있다. 또 1982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크리스마스에 광장 가운데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고 있는데, 각국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할 나무를 교황청에 기증하는 것을 영예로 여긴다고 한다.



↓↓대성당 정면과 미켈란제로 쿠폴라도 당연 성 베드로 광장에 포함시켜 봐야 그림이 완성된다.





↓↓천국의 황금 열쇠를 쥔 성 베드로상



↓↓광장 좌우 테라스 위에는 140명의 대리석 성인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다.




↓↓반원형인 광장 좌우에는 4열로 토스카타식 원주 284개와 각주 88개가 회랑 위의 테라스를 떠받치고 있다.




↓↓광장 중앙에 우뚝 선 오벨리스크.

 이집트에서 기원전 13세기에 만들어졌던 것을 로마의 3대 황제인 칼리굴라(Caligula)가 네로 경기장을 장식하기 위해 기원후 37년 이집트에서 가져왔고, 158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높이는 25.5m, 무게는 320t이다. 오벨리스크 위 십자가는 당연히 이 곳으로 옮길 때 만들어 붙인 것이다. 오벨리스크는 장식적인 의미 외에 해시계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인데 개신교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된 약탈 문화재를 여기에 세워야 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오벨리스크 기단부 위 4면에 부착된 청동으로 만든 사자와 독수리 조각상은 알렉산데르 7세 가문의 문장이다.



↑↑첫 번째면(대성당 방향)에는 "오벨리스크는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 황제 치세 동안 이집트에서 로마로 옮겨졌다. 1586년 교황 식스투스 5세가 예전의 자리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동시키고 성 십자가에 봉헌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 번째면(동쪽 화해의 길 방향)에는 "보라, 주님의 십자가로다. 반역의 무리들은 불러들 가라. 유다 지파의 사자가 승리하셨도다."

세 번째면(북쪽 사제궁 방향)에는 "교황 식스토 5세가 바티칸의 오벨리스크를 불경한 미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정당하고 순조롭게 불패의 십자가에 바쳤다. 교황 재위 제2년, 1586년"



↓↓오벨리스크 좌우에는 카를로 마데르나(Carlo Maderna)와 카를로 폰타나(Carlo Fontana)가 각각 만든 두 개의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베르니니는 분수가 타원의 초점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마법의 포인트

분수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지름 6~7m 정도의 검은 대리석 원반 표식(Centro del Colonnato)이 사방으로 박혀 있는데, 이 위에 서서 회랑을 쳐다보면 위 사진처럼 네 줄로 된 회랑이 맨 앞 한 줄만 보이고 나머지 세 줄은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그 원 위에서 걸음을 옮기면 나머지 세 줄이 갑자기 나타난다.




↓↓분수대 앞이 단연 가장 인기있는 촬영포인트다. 분수대 물이 유럽의 따가운 유럽의 태양열을 식혀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