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늦깍이 서유럽기행 #5 이탈리아/로마/시스티나예배당 Cappella Sistina
5월 19일 (금요일)
바티칸시국(바티칸 박물관-시스티나 예배당-바티칸 대성당-성베드로광장)-중식-번츠투어(트레비분수-스페인광장
-판테온신전-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로마시청광장, 청사-포로로마노-진실의 입-대전차경기장-콜로세움)
-호텔(석식)
바티칸 박물관 관람은 이 시스티나 예배당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이곳에서 교황을 뽑는 추기경들의 모임인 콘클라베가 열린다.
시스티나 예배당이 유명한 이유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벽화 때문이다.
물론 당시 르네상스 전성기의 최고의 화가이던 보티첼리, 기를란다이요, 코시모 로셀리, 시뇨렐리, 라파엘로의 스승이던 움브리아 최고의 화가 페루지노, 핀투리키오 등의 그림도 있다. 미켈란젤로를 제외하고도 이 정도의 이름만으로도 시스티나 예배당은 충분히 유명할 수가 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이야말로 한 개인의 한계를 넘어 인간 능력의 극한을 보여 주기 때문에 이곳에 그토록 사람들이 몰린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1475년에 교황 식스투스 4세(1471~1484)의 주문으로 착공하여 1483년 8월 15일에 완성되었다. ‘시스티나’라는 말은 이 성당을 만든 식스투스 4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 시스티나 예배당은 추기경 회의를 하는 곳으로 교황을 뽑기도 하며 피신처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시스티나 예배당 작품 배치는 아래와 같다.
☬〈모세의 일생〉 벽화
┗ 모세 이집트로 떠나다(페루지노)
┗ 모세의 증명(보티첼리)
┗ 홍해를 건너는 모세(로셀리)
┗ 계명판을 주다(로셀리)
┗ 코레, 다탄, 아비람의 벌(보티첼리)
┗ 모세의 죽음(시뇨렐리)
☬〈예수의 일생〉 벽화
┗ 그리스도의 세례(페루지노)
┗ 그리스도의 유혹(보티첼리)
┗ 성 베드로와 성 안드레아를 부르심(기를란다이요)
┗ 산상 설교(로셀리)
┗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주시다(페루지노)
┗ 마지막 만찬(로셀리)
☬미켈란젤로와 천장화 〈천지창조〉(미켈란젤로)
☬제단화 〈최후의 심판〉(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방을 나와 긴 통로를 통해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이동하는데 시스티나 예배당 입구에 사진촬영 금지와 정숙을 요구하는 안내 간판이 있다. 오해를 없애 기위해 아예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고 들어가는 편이 낳겠다. 어지간하면 한 컷 정도는 인증사진을 찍는 필자지만 분위기에 압도되어 촬영은 포기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사진이 한 장도 없어 자료사진으로 기억을 간직할 토대를 만들 수밖에 없다.
시스티나 에배당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콘클라베(Conclave)가 당연 우위에 있다.
콘클라베(라틴어: Conclave)는 ‘열쇠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방’, ‘걸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하는 단어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기독교의 역사에서 몇 세기에 걸쳐 개최되었으며, 외부의 간섭을 미리 일체 방지하여 비밀을 보관, 유지하도록 만들어졌다. 교황선출을 위해 로마로 모여든 추기경들이 교황선출은 뒤로 미룬채 사교에 몰두하여 교황자리를 장기간 비워두는 일이 벌어지자 신속한 교황선출을 강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고 한다.
인터넷서핑 중 콘클라베를 잘 설명해놓은 그림자료가 있어 빌려왔다.
왼쪽에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시국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고, 대륙별 추기경 수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측 시스티나예배당 내부 <최후의 심판> 벽화와 회의중인 추기경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성당 지붕위 굴뚝에 검은색 연기(선출 불발)와 흰색 연기(선출 성공)까지 묘사하고 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도 미켈란젤로를 신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실로 미켈란젤로 생애 중 한 일을 살펴보면 가히 인간의 능력을 벗어났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신과 같은 능력의 소유자의 불가사의한 작품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두고두고 기억을 되살려야할 것 같다.
사진촬영이 금지되길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허용된다한들 제대로 촬영이 안 되는 크기이고 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ENJOY이탈리아] 자료화면과 설명을 빌려와 복습자료로 삼으려 한다.
미켈란젤로와 천장화 〈천지창조〉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의 제작 기간은 1508년부터 1512년으로 4년이다. 중간에 율리오 2세가 경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14개월 동안 작업이 중단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 짧은 작업 기간은 실로 경이로울 정도다. 라파엘로가 수많은 조수를 기용하여 거의 협업에 가까운 작업을 했다면 미켈란젤로의 조수들은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조수’의 역할만 했을 뿐,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을 미켈란젤로 혼자 힘으로 그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가로 14미터, 세로 41미터의 공간에, 그것도 바닥이나 벽도 아닌 천장에 무려 343명에 달하는 인간군상과 배경을, 대충이 아니라 ‘완벽하게’ 그려 넣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프레스코 그림
프레스코라는 뜻은 ‘신선한’이라는 뜻인데 하얀 회반죽을 벽에 발라서 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염료를 넣어서 천천히 색이 벽에 스며들게 하는 벽화 방법이다. 벽화는 항상 외부에 노출이 되어 있고 바깥에 있는 벽화는 비바람을 맞아야 할 때도 많다. 때문에 겉에만 붓으로 터치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벽화를 그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이 손상될 때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밀라노에 있는, 유화로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마지막 만찬〉이다. 따라서 프레스코 그림은 아예 벽으로 색이 스며드는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프레스코 그림 기법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어서,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야 했으며, 한 번 회반죽이 말라 버리면 수정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실수를 하면 안 되었다. 그리는 방법은 지역마다 다양한데 주로 종이에 밑그림을 그리고 난 뒤 그 밑그림을 따라서 작은 구멍을 촘촘히 뚫고 그 사이로 벽에 염료가 스며들게 했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에게 이 프레스코 그림은 아주 힘든 방식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미켈란젤로는 1508년 5월 10일, 그의 조수들과 함께 시스티나 예배당에 들어간다. 그는 여기서 우선 첫 그림을 프레스코로 그려 보았다. 그는 그림을 역순서대로 그렸는데 혹 잘못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는 우선 천장을 9개의 틀로 나누었고, 다시 34개의 면으로 나누었다.
제단 쪽에서부터 ‘창세기’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그릴 작정이었는데 그의 첫 그림은 입구 쪽에 있는 ‘술취한 노아’였다. 전체 그림의 주제는 천장 중앙은 ‘창세기’, 그 주변은 ‘12인의 무녀와 예언자’, 삼각형 형태의 벽과 반월형 벽면은 ‘그리스도의 조상’, 그리고 네 모퉁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려 넣었다.
1512년 11월 1일, 미켈란젤로의 이 천장화가 일반에게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경악을 하고 만다. 우선 그림의 스케일이 굉장히 컸으며 또한 모든 내용이 유기적이며 기존의 천장화와는 달리 색감과 아울러 인물들이 너무나도 역동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지독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우선은 그에게 지급되기로 했던 임금이 잘 나오지 않았고, 계속 천장화를 그려야 하기 때문에 목을 뒤로 젖혀서 그림을 그려야 했으며, 물감은 자꾸 아래로 떨어져 눈으로 들어갔다.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점 하나도 허투로 찍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와 아울러 현직에 있는 예술가들에게 감동을 준 또 하나의 일화는 미켈란젤로에게 조수들이 있는데도 단 한 명의 도움도 없이 혼자 이 그림을 다 그렸다는 사실이다. 웬만한 화가들의 경우 조수들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조수들도 단순한 조수가 아니라 그림에 참여했기 때문에 실제 완성 작품이 누구의 작품이라고 해도 온전히 그가 다 그렸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이렇게 큰 그림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단 한 사람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혼자서 이 모든 것을 다 해냈다는 점에서 그가 한 인간으로서 예술의 극한까지 갔다고 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 미켈란젤로의 색채감
또한 후대에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미켈란젤로의 색채 감각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80년까지 수많은 비평가들이 그가 그린 천장화의 색감이 어둡고 명료하지 못하다고 늘 비판했다. 그런데 1980년 일본 NHK 방송국의 도움으로 이 천장화와 벽화에 묻은 때를 벗겨내자 사람들은 이제껏 어두운 색감은 바로 세월이 덧칠한 때였음을 알게 되었다. 천장화는 1992년에 세정 작업이 끝났고, 〈최후의 심판〉은 1994년에 세정 작업이 끝났다. 하지만 더욱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세월 쌓인 먼지 때문에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릴 당시의 색이 현재까지 보존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에 사용되었던 물감은 광물(흙)에서 꽃, 숯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했다. 미켈란젤로가 아주 뛰어난 색감의 소유자였음을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뒤 증명되었다.
〈천지창조〉 상세 설명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 하느님, 어둠과 밝음을 만드시다.
2. 해와 달의 창조
3. 하느님, 땅과 물을 만드시다
4. 남자의 창조
5. 여자의 창조
6. 원죄
7. 노아의 제물
8. 대홍수
9. 술취한 노아
10. 벌 받는 아만
11. 청동 뱀
12. 다윗과 골리앗
13. 쥬디타와 올로페르네
14. 예언자 요나
15. 예언자 예레미아(이 얼굴이 미켈란젤로의 초상이라고 본다.)
16. 무녀 리비카
17. 무녀 페르시카
18. 예언자 다니엘
19. 에언자 에제키아
20. 무녀 쿠마나
21. 무녀 엘리트레아
22. 예언자 이사야
23. 예언자 요엘
24. 무녀 델휘카
25. 예언자 쟈카리아
26. 솔로몬과 어머니와 함께 있는 어린아이
27. 미래의 왕 요시야의 의부모들
28. 아기 로보암과 어머니 후면의 솔로몬
29. 아버지와 어머니 아쏘피타와 함께 있는 어린 아사
30. 어린 아하지아가 어머니, 아버지, 요람과 그의 한 형제와 함께 있다.
31. 어린 히즈키아와 어머니, 아버지 아하즈
32. 어린 죠로 바벨과 어머니, 아버지 스알티엘
33. 어린 요시야와 어머니, 아버지 아몬
ㆍ1번 : 하느님의 모습이다. 자세히 그린 적이 없던 하느님의 모습을 과감하게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이후 이 그림이 하느님 모습의 원형이 되었다. 그림 속 내용은 하느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고 계시다. 이 그림은 원칙적으로는 제일 처음의 일이지만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역순으로 그렸기 때문에 제일 나중에 그린 그림이다.
ㆍ2번 : 하느님이 해와 달을 만드는 장면이다. 해는 너무 빛이 강렬하여 천사가 눈을 가렸다. 달은 너무 추워 천사가 옷을 덮어 쓰고 있는 모습이다. 왼손은 달, 오른손은 해이다. 하느님의 뒷모습이 드러나 있다.
ㆍ4번 :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하는 장면이다. 손끝으로 그에게 생명과 영혼을 집어넣어 주고 있다. 하느님의 얼굴은 노인이지만 몸은 아주 신체 건강한 젊은이의 모습이다.
ㆍ6번 : 이브가 뱀의 유혹에 빠져 사과를 따는 모습이다. 천사의 위협으로 슬퍼하며 지상낙원을 떠나는 장면으로 나누었다.
ㆍ7번 : 순서로는 8번 그림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미켈란젤로가 좀 더 크게 그릴 마음으로 이곳에 먼저 그림을 그렸다. 홍수 이후 노아가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다.
ㆍ8번 : 제일 처음 그린 그림으로 노아의 홍수다. 이때는 프레스코화에 대한 경험이 없다 보니 일반적인 그림처럼 인물들을 조밀하고 세밀하게 그렸다. 그러나 프레스코 그림은 벽화이기 때문에 윤곽이 크고 인물들을 분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알아차렸다고 한다.
ㆍ9번 : 술 취한 노아가 벌거벗은 모습으로 땅에서 잠을 자고 있는 장면이다.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를 손가락으로 조롱하며 큰 아들 샘은 그런 둘째 아들을 손으로 말리고 있다. 셋째 아들 야벳은 다른 곳을 보면서 아버지의 몸에 자신의 겉옷을 덮어주고 있다. 이에 노아가 잠에서 일어나 둘째 아들 함에게 평생 저주를 내렸다고 한다.
<천지창조>를 더욱 상세하게 설명한 자료가 있어 링크합니다.
제단화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1475~1564)는 천장화인 〈천지창조〉를 그린 뒤 20년이 지나서 교황 클레멘트 7세(1523~1534)에게 다시 한번 더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를 마저 그려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실제 작업은 1536년에 바오로 3세(1534~1549)의 명으로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여 1541년 10월 13일에 이 그림을 완성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역시 미켈란젤로 혼자 그렸다는 사실이다. 이때 미켈란젤로의 나이는 61세의 고령이었다. 물론 그 후로도 그는 28년의 삶을 더 살았다.1527년에 독일의 용병이던 란지케네키가 로마를 침공해서 약탈을 했고, 또한 이때는 한창 종교 개혁의 시기여서 가톨릭교계에서도 상당한 위험을 느끼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최후의 날’에 벌어질 일을 미리 경고하려는 의도도 다분했다. 이 그림의 주제를 미켈란젤로가 아닌 교황이 선택했다는 것이 우리가 이 벽화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출발 지점이다.이 벽화가 공개된 후 다시 한번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동작과 표정이 있다. 일반 프레스코 그림은 비교도 안 될 만큼의 큰 구도에 어울리는 장대한 스케일,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나체였다는 점이다. 이 나체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루터파로 의심되기도 했다. 나중에 피우스 4세가 ‘비속한 것은 가려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따라 다니엘라 다 볼테라라는 화가에게 모든 성기 부분에 다시 한 번 덧칠하도록 했다. 이에 다니엘라 다 볼테라는 사람들로부터 ‘기저귀 화가’라는 놀림을 평생 받아야 했다. 그래도 볼테라는 묵묵히 그림을 그렸는데 이유는 그가 미켈란젤로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화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무단히 노력했다. 이 결정은 미켈란젤로가 죽기 1달 전 트렌토 공의회의에서 결정된 것이었다.또한 이 그림을 벽화라는 개념 때문에 기존의 천장화는 모든 장면을 구분해서 그려야 했으나 이 그림은 하나의 구도 안에 유기적으로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로 인해 먼 하늘을 바라보듯이 그림 전체가 허공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최후의 심판〉 상세 설명
Ⓐ 천사들, 그리스도와 선택된 자들
1. 그리스도 2. 성모 3. 성 로렌조(자신이 순교당할 때 사용되던 불로 달군 석쇠를 짊어지고 있다.) 4. 성 안드레아(십자가와 X) 5. 세례자 성 요한(가죽을 둘러 쓰고 있다.) 6. 한 어머니와 딸 7. 천사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할 때 사용된 십자가를 하늘로 옮기고 있다. 8. 천사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채찍질을 당할 때 그리스도를 묶었던 원기둥을 하늘로 옮기고 있다. 9. 성 바울(고대 로마인이 입던 붉은 망토, 팔리오를 걸치고 있다. 흔히들 토가라고도 한다.) 10. 성 베드로(당연히 그는 열쇠를 들고 있다.) 11. 성 바르톨로메오(그는 자신의 가죽을 벗기는 처형을 당해서 고통스럽게 죽은 성인. 그때 사용되었던 칼을 들고 있다.) 12. 성 바르톨로메오의 벗겨진 몸의 가죽(여기서 얼굴은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이다.) 13. 성 시몬(톱을 들고 있다.) 14. 선한 도둑 디즈마(십자가를 들고 있다.) 15. 성 비아조(작살을 들고 있다.) 16.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트리나(갈고리가 달린 바퀴를 들고 있다.) 17. 성 세바스찬(화살을 들고 있다.) 18. 키레네 사람 시몬(십자가를 들고 있다.)
Ⓑ 나팔과 책을 든 천사들
19. 천국으로 가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좋은 책(아주 작다.) 20.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나쁜 책(아주 크다.)
Ⓒ 죽음에서의 부활
Ⓓ 천사들에게 구원을 받는 두 흑인
기독교의 교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기독 미술 학자들은 말한다. 즉, 부활의 믿음이다. 바로, 죽고 난 뒤 뼈가 살과 합쳐서 다시 살아나는 데 중요한 것은 이때까지 이들은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모른다는 것이다. 승천을 하다가 천사들이 천국행, 지옥행 심판을 결정한다. 이 장면은 많은 신자들에게 기독교의 교리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 저주받은 자들, 지옥으로 끌려가다
21. 절망한 사람들 22. 악마의 동굴 23. 카론테 24. 미노스(의전 담당관 체제나 경의 얼굴) 25. 흑인을 끌어올리는 천사
ㆍ1번 : 예수의 모습이 고통스러운 예수가 아니라 건장한 청년의 모습이다. 하지만 팔의 모습은 전능한 모습이 아닌 인간적인 한계가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바로 옆이 성모마리아다.
ㆍ3번 : 로렌조로서 그는 석쇠 위에 지져 순교했다.
ㆍ7번 : 예수 그리스도가 묶여 죽임을 당한 바로 그 십자가를 천사들이 하늘로 운반하고 있다. 그 옆에 가시 면류관이 있다.
ㆍ8번 : 예수 그리스도를 음해하던 세력 앞에서 심문을 당하면서 이 기둥에 묶여서 채찍을 맞았다. 그 기둥을 역시 천사들이 하늘로 운반하고 있다.
ㆍ11번 : 예수의 왼발 아래 부분에 있는 바르톨로메오는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을 당해 순교를 당한 성인으로서 종종 이탈리아 성화에 등장한다. 그의 오른손에는 작은 칼이, 왼손에는 벗겨진 자신의 가죽이 들려 있다. 여기서 가죽을 잘 보면 미켈란젤로와 인물이 흡사하다. 이 벗겨진 가죽으로 자신을 형상화한 미켈란젤로가 당시 이 벽화를 만들면서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우회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ㆍ12번 : 미켈란젤로의 초상화다. 왜 그가 자신의 모습을 이 그림에 넣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추측하기에 그 당시 미켈란젤로가 예술가로서 심각한 정신적 고뇌를 받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그가 독실한 신자로서 바로 끔찍한 고통의 순간에서도 변치 않는 자신의 신앙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가 있다.
ㆍ19번 : 예수 그리스도에게 선택된 천국으로 갈 만한 사람들의 명단이다. 책이 작다는 것은 그만큼 선인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ㆍ20번 : 두 명은 책을 들고 있는데 바로 지옥에 떨어질 자들의 명단이다.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ㆍ24번 : 당나귀 귀에다가 뱀이 몸을 감싸는 사람이 보인다. 크레타 왕국의 미노스 왕이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은 소위 폭군으로 이름을 드날렸든데 무리한 조공을 아테네 사람들에게 요구하여 민중들을 고통에 빠뜨리게 한 사람이다. 그는 지옥에 갔는데 그의 얼굴은 바로 당시 바오로 3세의 의전 담당관인 체제나 경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바티칸의 모든 의식, 예배 절차를 주관하는 막강한 자리다. 이 체제나 경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이 〈최후의 심판〉이 나체가 많이 나와서 불경하다고 식당에나 어울릴 그림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에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허락을 얻어 이 얼굴을 체제나 경으로 그린다. 재미있는 점은 바로 뱀이 체제나경의 성기를 물고 있다는 점이다.
ㆍ25번 : 미켈란젤로가 살았던 당시, 흑인은 짐승과 진배없는 존재로 무시당했다. 천국과 지옥의 개념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파격적으로 한 천사가 지옥에 떨어지는 두 흑인을 끌어올리는 장면을 그려 넣었다. 이후 가톨릭은 인종 차별의 비판에서 이 최후의 심판에 있는 이 그림으로 번번히 그 화살을 빗겨갈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