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travel/Australia

[호주 여행 #3] 시드니 페더데일 야생동물원

수지인 2016. 8. 7. 21:19

 

 

 

 

 

호주 여행 두번째 볼거리  페더데일 야생동물원

호주에 서식하고있는 에뮤, 캥거루, 코알라 등을 한곳에서 볼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아담한 동물원이다.

어린이들은 볼거리가 있겠지만 멀리 달려간 우리들에겐 그다지 흥미를 끌만한 볼거리가 아니듯....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중 로드킬 흔적이 자주 눈에 띠는 것으로 보아 야생동물이 많기는 하나본데 여행을 준비하며 수집한 정보처럼 길을 막을 정도는 아니듯...

 

 

 

 

 

 

 

 

 

 

 

 

 호주 원주민  애버리진(Aborigine)

 

  애버리진은 현재로부터 약 5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바다가 얕아진 사이에 동남아로부터 배를 타고 호주에  도착하였다.

 

  그 후 2~4만 년간 간빙기가 오면서 다른 대륙들과 동떨어져 살았다고 알고 있으나  Dr Irina Pugach, of the 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in Leipzig, Germany 가 호주 원주민의 DNA를 조사한 결과  11%가 인도인의 DNA이며, 원주민의 호주 이주는 가장 빠른 시기가 45,000년전이며 대규모 이주는 쿡 선장이 호주를 발견하기 4,230년전이며 그때 호주 들개도 같이 호주로 이주하였다.

 

  이 나라의 역사는 17세기에 네덜란드의 모험가들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하자 연안 탐험을 실시하여 ‘신 네덜란드’라 명명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이들에게 발견될 당시 약 100만명의 애버리진과 300여개의 부족국가가 있었고 이들 사이에서 적어도 250개의 언어 및 700여개의 방언이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2차 대전 당시 노던 테리토리에서 참호를 파던 군인등에 의해 발견된 코인이 900년경 지금의 아프리카 탄자니아 지방 왕국의 것으로 밝혀져 네덜란드 보다도 아프리카 국가가 더 빨리 호주 대륙을 발견한것이라고 한다.

 

 

  영국의 죄수 폭증과 미국 독립혁명(1776년)으로 뉴사우스웨일즈주에 새로운 유형(流刑) 식민지를 건설하기로 하였다. 1788년 1월 26일,당시 영국 왕 조지 3세는  아서 필립에게 명하여 11척의 배에 1500명의 인원이 탑승한 첫 함대가 시드니 항구에 도착하고 뉴사우스웨일즈 식민지 건설을 시작하였다. 식량을 자급하는 일이 당시 급선무였으나, 미지의 풍토에서 농업 경험자가 적었던 관계로 개발은 진척되지 못했다. 마지막 죄수 호송인 1868년까지 약 16만 명에 달하는 죄수들이 오스트레일리아로 호송되어 정착하게 된다. 그래서 호주 영어 발음이 지금도 영국에서 가장 하류계층의 사람들이 사용한다 하여 천박시 대하는 코크니 발음인것 이며, 1790년대 부터 자유 정착민이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나 태생이 죄수 출신이라 그런지 원주민을 학살하엿으며 1860년대에는 태스마니아 섬 원주민들을 전원 학살하기도 하엿으며 1868년-1968년까지 거의 다 학살하고 원주민 약 4만 명이 특별보호구역에 갇혀 있으면서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책 때문에 1970년대 까지 백호주의를 부르짖다 결국 원주민 학살에 대해 수상이 "SORRY"라는 한마디로 사과하고 동남아시아 이민자도 받기 시작했다.

100만 명의 원주민이 300년 후에 4만 명으로 감소됐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또 그때부터 또 다시 100년이 지난 후 2007년에 실시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원주민 애버리진의 총수는 약 45만 명으로 밝혀졌다.

2015년 현재 영국계 백인의 나라인 호주의 총인구는 2천 3백만 명으로 추산한다. 이 중에 애버리진 원주민의 수는 2.2%에 불과하다.


 

 

 

 

 

애보리진(Aborigines)에 관한 이야기를 동물원에서 하게 된 것은 페데데일 동물원이 특별히 보잘 것이 없어서다.

 

뉴질랜드에는 마오리라는 원주민이 있고,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애보리진이이 있다.

두 나라 모두 거의 같은 시기에 서방으로 들어온 개척자(이민자)들로부터 차별과 괴롭힘을 당했지만 뉴질랜드의 원주민에 비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특히 박해가 심했다.

1788년 영국의 아서 필립(Arther Phillip)이 죄수를 태운 배를 이끌고 호주에 상륙한다.

유럽인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질병과 탄압, 말살 정책 등에 의해 원주민들의 수는 격감하게 된다.

이때, 1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을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시킨다는 명목 하에 부모에게서 강제로 떼어 내 고아원과 교회로 보내지기도 하고 강제 입양되기도 했는데, 이런 아이들을 통틀어 '도둑맞은 세대' 라고 부른다.

이들은 점차 기후 조건이 가장 열악하고 건조한 곳으로 밀려나 생활하게 되고, 현재는 노던 테리토리에 가장 많은 수가 거주하며, 호주 사회의 최하층으로 정부의 보호 구역 안에서 노동에 종사하거나 보조금을 받아가며 살아간다.

 

2008년 호주의회가 케빈러드(Kevin Rudd)총리의 사과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처음으로 공식 사과를 한 상태이나, 여전히 호주 내에서 애보리진은 소외 계층이며 백인들의 평균수명보다 17년이나 적고, 실업률은 3배 이상이다.

호주에서 공식적으로는 백호주의가 없어졌다고는 하나 백인들의 정서는 아직 바뀌지 않은 상황이고, 특히 애보리진에 대한 정책은 진의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한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영주권을 가진 호주국민이 평생 수령하는 연금이 우리 돈으로 17억 8천만원(조금 의심스러우나 들은 대로 기록한다.)이란다.

그런데 애보리진에게는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원한다고 한다. 단, 아이를 하나만 낳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산아를 제한하는 이 조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건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애보리진은 학교도 다니지 않고, 술과 마약으로 소일한다. 이로 인한 질병과 가정폭력, 강간 등으로 악순환은 계속된다.

 

여행 중 호주에 첫발을 내딛고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 중 거리에서 신호대기중인 자동차 앞 유리를 닦는 검은 피부의 청년들이 있어 깜짝 놀랐다. 선진국이고 세계적으로 복지국가라는 나라에 이런 풍경은 무엇일까? 이들이 바로 애보리진이었다.

 

직접 보지는 못하고 들은 이야기지만 애보리진이 사는 마을에 가면 전선에 신발을 매달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마약이 들어왔으니 사러 오라는 표시란다. 그럼 왜 법의 잣대를 매섭게 들이대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방관하는 게 아닐까? 방관한다면 왜 방관할까? 의문투성이다.

 

 

 

 

 

 

 

 

 

 

 

 

 

 

 

 

 

 

 

 

 

 

 

▽동물원을 돌아보며 인상 깊었던 하나는 코알라가 모두 자고있었다는 점이다.

  깨오있는 녀석도 눈에 잔뜩 잠이 든듯 게슴체레한 눈으로 바라본다.

  코알라가 이렇게 잠만 자는 이유는 먹이인 유클립투스나무가 잠을 불러오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또 코알라 치아가 하얀것 역시 유크립투스를 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호주의 유명한 프로폴리스치약도 유크립투스나무 추출물로 만든다고 한다.

 

 

 

 

애보리진의 전통악기 디저리두(Didgeridoo) 연주를 들어 보십니다.

 

 

 

 

2016. 07. 09.

호주 시드니 페더데일 야생동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