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여행 #2] 블루마운틴/세자매봉/싸이닉월드
제2일(7월 9일 토요일)
♤오늘의 여정 : 시드니공항 도착(06:15) 가이드 미팅 - 블루마운틴으로 이동(버스 2시간)-블루마운틴 관광
-사이닉월드 트래킹-THE LOOKOUT ECHOPOINT 레스토랑(T-Bone 스테이크 중식)
-페더데일 야생동물원-시드니로 귀환-시드니타워-시드니 하버 디너 크루즈(석식, 야경 감상)
-호텔(COURTYARD MARRIOTT NORTH RYDE)
▽호주 시드니공항 도착(06:15)
호주는 우리나라보다 1시간이 빠르니 입국수속을 마치고 가이드 미팅장소에 나온 시간은 한국시간으로도 아침 6시가 조금 넘었을 것이다.
한국은 날이 밝았을 시간인데 호주는 계절이 우리와 정 반대여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호주는 외부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기 위하여 뉴질랜드와 경쟁하듯 통관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 일행 20명이 모두 모이는데 2시간 가량 걸렸다.
대기하고 있던 전용버스에 오르니 가이드가 호주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을 한다.
-156개국 사람이 모여 사는 다민족 국가를 통제하려면 법 집행이 엄격할 수밖에 없다.
-차내 물외에 음식 섭취 안 되며, 운행 중 차내 자리 이동도 안된다. 적발 시 벌금 100만원...이 말 듣고 어떻게 먹고 움직이랴.
이 정보가 틀렸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호주는 청정, 복지, 자연, 예방, 안전의 나라다.
-호주 사람들은 주 2~4일 일한다. 대충대충, 빨리빨리, 서례설례라는 말이 없고, 바빠서 뛰는 사람도 없다. 뛰는 사람은 모두 운동중...ㅎㅎ
-노동자의 천국이다. 청소부나 택배기사가 국회의원 보수와 같다? 주급이 300만원이라니 믿어도 될지....
-삶의 우선 순위가 건강, 장 일이다.
-아이들의 나라, 여자의 나라다. 복지를 위한 경제적 부담은 강자가 지고, 아이나 여자는 보호의 대상이다.
-약자를 상대로 한 범죄와 음식물 관련 범죄는 엄하게 다스린다.
시드니(Sydney)
시드니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로서 도시권의 인구가 약 475만명이다.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행정도시이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식민지가 있던 자리이다.
그 식민지는 영국에서 온 선단 퍼스트 플리트(First Fleet)의 선장인 아서 필립(Arthur Phillip)에 의하여 시드니 코브(Sydney Cove)에 1788년에 세워졌다.
시드니는 행정구역상 센터럴시티역 주변의 1개 행정자치구(Council)의 명칭으로 시드니 주변 지역의 주소에서는 시드니(Sydney) 라는 지명이 들어가지 않는다.
2000년에는 하계 올림픽의 개최지가 되었다.
시드니 항구 연안에는 적어도 4만년 전부터 원주민이 정착했다.
시드니라는 이름은 당시 영국의 각료였던 시드니경(卿)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유럽인의 관심이 이 지역으로 생긴 것은 1770년 제임스 쿡의 포트 잭슨 만의 발견 이후이다.
☞시드니 관련 상세정보는 위키백과
▽이번 여행의 첫번째 관광지 블루마운틴(Blue Mountain)
호주의 그랜드 캐년이라 불리우는 블루 마운틴. 산 주변에 코알라의 먹이인 유칼리투스 나무 유액이 증발하여 산 전체가 푸른색을 띤다하여
블루 마운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공항에서 날씨 검색을 할 때만 해도 블루 마운틴은 비가 내린다고 되어있어 첫 관광지부터 망치는가 싶어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하니 쨍하다...축복!!!
맑은날은 시계 100키로 이상이지만 안개가 끼면 200미터도 안된다고 하니 만약 비가 내렸더라면 지금 내가 서있는 에코포인트에서
블루 마운틴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가이드 경험에 의하면 10번 중 4번 정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단다.
오늘같은 날씨는 안개도 적당히 피어올라 90% 만족할 수준이라고....
▽원주민의 전설이 얽힌 세자매봉
▽파노라마 사진
도착해서 이런 모습이었는데 불과 10분도 지나지않아 마치 커텐을 두르듯 안개가 앞을 가렸다.
▽세자매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그러고 보니 푸른 빛이 도는듯 하다.
▽사이닉 월드를 향해 고고씽~
총 544미터에 이르는 곤돌라, 케이블카, 석탄운반용 로프웨이 그리고 원시림으로 들어가 트래킹
▽예쁜 야생 조류도 보입니다.
▽석탄을 채굴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세종류의 탈것을 갈아 타고 이동합니다.
▽가까이에서 본 세자매봉
▽식사를 했던 레스토랑(T-Bone 스테이크)
장엄한 블루마운틴을 조망하며 맛있는 스테이크와 후식으로 여행의 기쁨이 UP~
▽식사 후 레스토랑 주변을 산책하며 발견한 우리나라에서는 보지못한 꽃들
다음 관관 포인트 페어데일 야생동물원으로 이동하며 가이드는 호주에 대한 설명을 다시 시작한다.
-호주는 예방을 중시하는 나라다.
병이 나면 국가에서 부담해야 할 의료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노인들이 운동을 하면 쎈터링크의 확인 거쳐 주 48만원의 수당을 지급한다. 특히 중풍이나 치매 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예방약을 공급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교도소가 가장 적은 나라다.
범죄자의 40%가 어린시절 결손가정에서 자란 것으로 조사되어, 이혼할 경우 양육이 원활이 이루어지도록 이혼수당을 지급한다. 그 결과 범죄율이 대폭 줄었다.
-코알라는 치아가 하얗고, 잠을 자는 시간이 많다.
원인은 유칼립투스나무를 먹기 때문인데, 이 나무에 잠이오는 성분이 있고, 치아를 하얗게 하는 성분도 있다. 유명한 프로폴리스치약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호주의 전봇대는 대부분 유칼립투스나무다.
썩지 않고 단단해서 100~150년 사용이 가능하다.
-호주를 상징하는 동물 캥거루.
호주위 국장에 캥거루가 그려져 있다. 캥거루는 뒷바차기, 2단 옆차기는 물론 권투도 한다. 그러나 후진은 못하고 오로지 전진만 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사업자에게 앞만 보고 전진하라고 캥거루가죽 벨트를 선물한다.
호주에서 캥거루가죽 벨트 가격은 우리돈 7~8만원 정도였다.
토착민들이 살던 미지의 대륙 ‘테라 오스트랄리스(남쪽에 있는 마지막 땅)’에 최초로 발을 들여놓은 서양인은 1770년 보타니 베이(Botany Bay)에 상륙한 제임스 쿡 선장(사실은 이전에 아프리카인과 네델란드 탐험가가 먼저 발을 들여놓았다)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이미 아메리카라는 보다 가깝고 거대한 대륙에 식민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멀고 먼 남반구의 이 땅은 관심 밖이었다. 그렇지만 프랑스가 이 땅에 눈독을 들이자, 영국 정부는 1787년 서둘러 이 땅을 뉴사우스웨일스(New South Wales)라 이름 붙이고 자국의 영토임을 공표해 버린다.
당시 영국은 반역자나 범죄자들을 영국 바깥으로 추방하는 정책을 취했는데, 이때 주로 추방하는 곳이 아메리카 식민지였다. 그렇지만 1776년 미국이 독립하게 되자 이러한 기능을 대신할 곳이 필요했다. 영국의 죄수 폭증과 미국독립으로 야기된 혼란 해결 방안으로 탐험가이자 식물학자인 조지프 뱅크스(Joseph Banks)가 뉴 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에 새 유배지 건설을 제안하였다.
1788년 1월 26일, 초대 총독이 되는 아서 필립(Arthur Phillip)이 11척의 선박에 788명의 죄수와 수백 명의 선원을 이끌고 25,000Km를 항해하여 도착한 것이 오스트레일리아 이주 역사의 시작이었다. 이로써 평화롭고 한적했던 애버리진의 생활무대는 범죄자들의 유형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영국 범죄자들의 격리이주는 1868년까지 80년 동안 지속되어 약 16만 5천명에 달하는 범죄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정착하게 된다.
영국의 범죄자들이 이주해서 만들어진 나라 오스트레일리아,
영국의 정치범들이 이주해서 만들어진 나라 뉴질랜드,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뉴칼레도니아는 프랑스 정치범들의 유형지 였다.
이곳에 유배를 당한 범죄자들은 주로 강도, 강간, 폭행과 같은 짓으로 형량을 받은 것으로 살인과 같은 흉악범은 아니었으나 개척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을 살해하면서 자연히 흉악스런 면모를 가지게 되었다. 원주민들은 이런 범죄자들(침략자들)에게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고 쫓겨났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많은 수가 학살되어 인구가 1/10로 줄었으며, 특히 태즈메이니아에서는 멸족을 당했다고 한다. 정치범들이 정착한 그 옆에 있는 뉴질랜드에서는 그 곳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평화롭게 지내면서 현명한 공존관계를 맺은 것과는 사뭇 다르게, 호주에 정착한 이들은 태생이 범죄자 출신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원주민들을 살육했으며 1860년대에는 태즈메이니아 섬 원주민들을 전원 학살키도 하였다. 1968년까지 거의 다 학살하고 이제는 남은 원주민 약 4만 명이 특별보호구역에 갇혀 있으면서 빈곤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 자료 :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alchanksd/20206786744]
백호주의(白濠主義 / White Australia policy, WAP)
백호주의란 1901년부터 1973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정부가 일관되게 유지했던 비백인 이민 제한 정책을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개별 식민지로 나뉘어 있던 1840년대에 오스트레일리아는 경제 공황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1850년대에 들어서면서 금광이 발견되자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이른바 골드러시가 벌어졌고 이로 인해 오스트레일리아에 많은 이민자가 몰려들었다.
그 중에는 중국계 이민이 많았으며 1881년에는 5만 명에 달하였다. 이러한 저임금 노동은 백인 노동자의 임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전(全) 오스트레일리아 회의는 1888년에 열린 회의에서 중국계의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을 제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러한 제한 조치가 더욱 강화되면서 1896년에 열린 회의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모든 유색 인종을 배척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되기에 이른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백호주의 정책 도입은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성립된 1901년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 이민 제한법이라는
법률이 통과되면서 정식 도입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의 백호주의 정책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점차 완화되었고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비영국계 백인 이민과 비백인 이민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백호주의 정책은 1973년에 들어서면서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으며 1975년에 인종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인종에 따른 이민 정책이 불법화된다.[자료 ; 위키백과], [사진자료 : 세게일보 인터넷판 2016.08.09]
Gold Rush(黃金狂시대)가 富와 이민, 반란을 몰고 오다!
호주의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1851년에 금광이 발견된 이후부터다. 금은 1851년 뉴사우스웨일즈 및 빅토리아 중부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금맥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호주 전역으로부터 (모험심에 불타는 젊은 여성들 일부를 포함한) 수천의 젊은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금광에 관한 소문은 중국에서 온 광부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유흥업 종사자들, 술장사들이나 불법 주류 판매업자들 및 매춘부, 돌팔이 의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 모아 이곳은 머지않아 혼란의 도가니로 변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오스트레일리아로 유입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1852년 한 해에만 37만여 명의 이민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했고, 그리하여 약 20년 후인 1871년의 통계를 보면,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는 무려 170만 명을 넘어선다. 심지어 이때는 백인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모여든 것이다.
2016. 07. 09.
호주 블루마운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