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 여행 #25-세비야 '스페인광장'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세비야 스페인광장'
여행 5일째
이제 지칠 때도 되어가건만 새로운 문화 속으로 들어가 흡수하느라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힘이 솟는다.
오늘은 스페인 광장중 가장 아름답다는 세비야 스페인 광장과 세계에서 세번째로 크고 아름다운 세비야 대성당, 마리아루이사 공원 그리고 황금의 탑을 관광하고 국경을 넘어 포르투칼로 이동할 것이다.
세비야 [Sevilla]
(영) Seville. 옛 이름은 Hispalis.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세비야 주의 주도.
과달키비르 강 어귀에 있는 내륙 항구도시이다. 이곳은 문화 중심지로서,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을 지배했을 때의 수도로서, 스페인의 신세계 탐험의 중심지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곳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았을 때에는 히스팔리스로 알려졌으며 서(西)고트족의 중심지였다가 711년에 무어인들에게 점령당했다. 아바스 왕조 및 그후의 알모라비드와 알모아드 동맹의 지배를 받던 당시의 문화 중심지였다. 1248년 페르난도 3세가 이끄는 스페인 그리스도교도들에 의해 이슬람교도들이 쫓겨난 뒤 이 도시는 급속히 지위가 격상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이 도시는 새로운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1503년 카사데콘트라타시온(무역관)의 설립과 함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들과의 해외교역에 있어서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17세기에 들어서 교역업이 쇠퇴한 반면 문화활동이 활발해졌다. 이 도시 출신의 화가인 벨라스케스, 수르바란, 무리요와 조각가인 후안 마르티네스 몬타녜스, 시인 페르난도 데 에라라 등은 스페인이 자랑하는 예술가들로 꼽힌다.
18세기에 부르봉 왕조가 이 도시의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19세기에 일어난 프랑스의 침략, 혁명, 내전 등으로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1847년에 부활절에 이은 연례 축제로 4월 축제가 마련되었다. 1929년에 개최된 이베리아아메리카 박람회는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며, 주변의 습지는 경작지로 개발되었다. 20세기에는 항구가 확장되었으며, 공업·상업의 요지로 다시 활력을 얻게 되었다. 주교관구로서의 지위를 이어오고 있으며, 대학교(1502 설립)가 하나 있다. 주요수출품은 포도주·올리브·과일·코르크·광물이며, 공업으로는 담배·무기·섬유·도자기·기계류의 제조업이 이루어진다. 세비야 대성당(1403~1506 설립)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가운데 하나이다. <자료:브리태니커>
이 문을 들어서면 오픈된 광장이 있긴하지만 건물을 통해서 들어가는 아치형 문이다.
이사벨여왕이 일구어낸 통합 왕조의 문장과 아라곤의 문(PVERTA DE ARAGON)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건물을 통해 광장으로 진입합니다.
스페인 광장 - Plaza de España
스페인 광장(에스파냐 광장)은 마리아 루이사 공원에 인접해 있으며, 대성당 동쪽으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세비야의 가장 인상적인 장소이다. 이 광장은 반나절을 충분히 보낼수 있는 매우 이상적인 공간이다.오늘날 광장에는 정부청사가 들어가 있으며 작은 수로가 광장을 둘러싸고 있어서 보트를 빌려 탈 수도 있다.
광장은 반원의 형태로 둘려싸여진 거대한 건물이 있으며 아래부분은 여러칸으로 분류되어 스페인 모든 도시의 지도와 특색이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스페인은 워낙 도시도 많고 큰 나라이기 때문에 이것은 반원의 형태로 거대한 에스파냐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지방성이 강한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이곳을 방문하여 자신이 속한 도시앞에서 사진찍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스페인 모든 도시의 지도와 특색이 타일로 장식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