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곳 경교장
대한민국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곳 경교장(京橋莊)
사적 제465호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공간이자, 백범 김구선생이 서거한 역사의 현장이다.
서울시에서는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을 되살려 시민들의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자 경교장을 원형 복원하고, 내부를 전시공간으로 조성하였다.
복원된 경교장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나온 역사를 유물과 영상, 정보검색코너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경교장의 역사
경교장은 일제강점기 광산업으로 큰 부를 축적한 최창학에 의해 1938년 건립되었다.
이 때에는 죽첨장(竹添莊)이라 불리웠다.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환국하자 경교장은 임시정부의 활동 공간 및 김구 주석과 임정요인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1949년 김구선생이 경교장에서 서거한 후에는 중화민국 대사관저, 월남대사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1967년부터 병원시설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 경교장은 병원으로 내·외부가 개조되어 원형이 변형되었다.
1960년대부터 경교장 보존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문화재지정이 검토되기 시작해 2001년 비로소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05년 국가 사적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2010년 역사적인 경교장 복원이 시작되었다. 복원공사는 경교장내 병원시설을 철거하고, 건축 당시의 설계도면과 임시정부 거주 당시의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내부를 원형대로 복원하는 바식으로 추진되었다.
대한민국의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그리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하였ㅇ니, 이것이 곧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수립되었다. 이후 1945년 해방을 맞아 환국할 때까지 민족의 대표 기구로서 독립운동을 총괄 지휘하였다.
1945년 11월 23일과 12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으로부터 환국하여 경교장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해 신탁통치에 반대하고, 남과 북이 하나되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려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8년 8월 15일 수립을 선포한 대한민국정부로 그 법통이 계승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헌 헌법 전문을 통해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를 계승하였다"는 사실을 밝혀 놓았고, 국호(대한민국)·연호(대한민국)·국기(태극기)·애국가도 그대로 이어 받았다.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
1945년 11월 조국에 돌아온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은 경교장에서 남과 북의 역량을 단결하여 자주 통일의 구체안을 완성하기 위한 국무회의를 지속적하고, 신탁통치반대운동을 추진하였다. 또한 김구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하여 남북협상에 참가하는 등 최후의 노력을 전개하던 중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대한민국 육군소위이며 주한미군 방첩대(CIC) 요원인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였다.
경교장에는 경교장 임시정부 시절의 유물전시와 재현전시로 되어있다.
지상 1·2층은 'LIFE'誌 등 각종 사료를 근거로 하여 임시정부 당시의 모습으로 각 실을 재현하였다.
각 실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되어 안내를 받을 수 있으며, 관람료는 무료다.
경교장은 강북삼성병원내에 부속건물의 일부처럼 보인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적 건물이 이렇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
현관을 들어서면 우선 영상자료실에서 간단한 설명과 관람 순서를 보도록 안내한다.
관람순서는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지하층, 1층, 2층 순서로 관람하도록 권하고 있다.
현관 우측에 지하 전시실로 안내하는 표지판을 따라가면 지하전시실이 나온다.
계단 폭이 좁고 층고가 낮아 조심해야 한다.
김구선생의 사진
아래 글을 눈여겨보자.
앞서간 사람이 올바를 길을 가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메시지다.
선생의 혈의(등록문화재 제439호)
선생의 데드마스크
각종 유물들
현재의 구기와 많이 다름을 볼 수 있다.
경교장 원형 모형
지금도 이런 상태로 보존 되고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의 말대로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없는 행동이 지금의 가슴아픈 경교장을 만들 것이 아닐지....
속옷에 쓰여진 밀서(1948. 2. 3)
광목 속옷에 삐곡히 쓴 글씨와 보내는 사람을 증명하는 손도장이 선명하다.
각종 전단지들
1층 귀빈식당
1945년 12월 2일 임시정부의 공식 만찬이 개최되고, 김구가 서거했을 때 빈소로 사용되었던 곳.
1층 응접실
임시정부의 국무위원회 등 대표적인 회의들이 개최되고, 김구가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접견하던 곳.
현관 좌측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건축 원형 전시실
계단을 올라가 우측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당시의 시설을 볼 수 있도록 원형을 남겨둔 방이 있다.
이 곳은 임시정부 당시 욕실로 사용되던 공간으로 벽체, 바닥(타일), 천정, 창문 등이 건축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김구 거실(집무실)
김구 주석이 평사시 공무를 보거나 접견장소로 사용하던 곳이며 1949년 6월 26일 바로 이 방에서 안두희의 총탄을 맞고 서거했다.
복도
임시정부 요인 숙소
1945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과 수행원들이 환국하여 머문 곳이다.
서거 당시 책상에 놓여있던 김구의 유묵 "사무사(思無邪)"
'생각함에 그릇됨이 없다'라는 뜻이다.
남측 복도
채광이 잘 되어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2층 응접실(서재)
환국 후 김구와 국내 정당대표들과의 회담 및 국무위원회가 개최되던 곳이다.
응접실 벽난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에 따라 개최된 임시정부의 국무위원회 개최 장면
2013.3.23.
종로구 평동 경교장